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 그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참 재미있게 후다닥 읽어 치웠다. 그리고는 책을 아낌없이 후배에게 던져준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나의 책장에 없는 걸 보면. 아마 가벼움 때문이었으리라. 나의 이십대엔 가벼운 건 무조건 싫었으니. 그후 작가로서 더 화려해지고 주변에 그녀의 작품이 널려 있어도  난 공지영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내가 공지영을 읽고 있다. 신문에 연재된 그녀의 글을 어쩌다 읽었는데 정말 쉽게 잘도 읽혔다. <무소의~>보다도 더 가볍게 읽혔다. 그리고 난 매일 아침 신문을 펼치면 제일 먼저 그녀의  즐거운 집부터 들여다본다.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앉아 신문 연재 소설을 들여다보는 가벼운 아줌마가 되었지만 난 내가 부끄럽지 않다.

이혼을 세 번씩이나 하고 아빠가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별난 여자가 아닌 그냥 한 여자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인생이 들여다 보였다. 내가 이십대였다면 난 또 그녀의 가벼움만 탓했을 것이다. 내가 이십대가 아닌 게 정말 다행이다. 결코 가볍지 않게 살아낸 인생을, 그것도 자신의 인생(소설이라는 허구의 이름을 빌렸지만)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이끌어내는 작가가 어떤 날은 징하기도 하다. 무거운 세월을 다 통과해본 자들이 터득한 경지가 이런 가벼움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녀의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니 책이 너덜너덜했다. 시골 한구석 도서관에 있는 책이 이렇게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난 이런 제목의 작품이 있는 줄도 몰랐다.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 셀러 작가에다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는데도 난 몰랐다. 그동안 신문은 왜 본 건가 싶다. 분명 기사가 많이 나왔을 법도 한데 그걸 다 비껴가다니...

책을 읽는 내내 뭔지 모를 꿀꿀함이 있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 빗나가는 데서 오는 감정이었다. 가볍지도 쉽게 읽히지도 않았다. 교도소, 사형수, 죽음, 자살, 상처라는 단어들이 사랑과  용서라는 단어 앞에서 무너져내렸다. 어떻게도 치유되지 않았던 문유경의 상처를 치유해준 건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였다. 유경은 자신보다 더 큰 상처를 갖고 세상을 향해 칼날을 휘둘러댄 윤수의 '진짜 이야기'를 대면하면서 비로소 '진짜 자신'을 바라보고 모두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만났던 그 시간, 우리가 마셨던 인스턴트 커피, 우리가 나누었던 작은 빵, 일주일에 그 몇 시간으로 인해 저는 어떤 모욕도 참아낼 수 있었고,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었으며,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고, 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신께 뉘우치며 참회했다고 말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진정 귀중하고 또 따뜻하고 ... 행복한 시간을 가졌었다고. 혹여 허락하신다면 말하고 싶다고... 당신의 상처받은 영혼을 내 목숨을 다해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살아서 마지막으로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 내 입으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그 말, 을 꼭 하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눈시울이 젖었고, 작가의 말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눈시울이 젖었다. 유경도 윤수도  필요한 건 사랑이었는데... 화려한 행복으로 포장해려 했지만 유경의 상처는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결국 상처 받아서 뽀족뽀족해진 윤수의 마음만이 유경의 상처를 보듬고 더이상 자살을 꿈꾸지 않게 해주었다. 

유경, 윤수 두 사람의 상처의 근원이 엄마였다는 데 가슴이 섬뜩해진다. 유경이 어린 나이에 강간을 당했을 때 엄마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면, 윤수의 엄마가 두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상처는, 어쩌면 점점 더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엄마 된 자로서 어깨가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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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15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 영화가 되기 전에 읽었었죠.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겠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근데, 아직도 영화로는 못 봤어요. ㅠ,ㅠ

소나무집 2007-05-2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소설만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