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불행을 피고인석에 앉힌 채 본인 스스로가 검사도 되고 변호인도 되면서 삶의 법정을 개최한다. 드물게 나타나는 행복을 참고인 삼아 내 불행의 원인을 따져 물을 때도 더러 있다. 그리고... 결론도 나지 않을 판결문을 우리는 매일 밤마다 반복하여 작성한다. 나의 불행은 유죄라고 거듭 주장하지만 배심원단의 표정은 냉랭하다. 나는 방청석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나를 조금 더 이해해 달라고, 나의 불행이 유죄라는 사실을 조금 더 믿어 달라고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나 불행의 원인인 결국 나에게로 회귀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유죄인가?


미세먼지가 걷힌 주말 오후.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입춘첩을 큼지막하게 써서 대문에 붙여야 할 것만 같은 포근한 날씨. 나는 아침부터 서둘러 청소를 하고, 세탁기에 넣어둔 밀린 빨래를 돌렸다. 그렇게 분주하고 정신없는 오전을 보낸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서재에 앉았다. 언제인지도 확실치 않은 낡은 노트에서 보았던 문장. 예전부터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날짜도 기입하지 않은 채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써놓는 버릇이 있다. 어떤 글은 다른 누군가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로 도배가 된 것도 있고, 또 어떤 문장은 내가 읽었던 어느 책에서 보았음직한 표절문 비슷한 것도 있고, 또 어떤 문장은 지금 읽어도 꽤나 괜찮아 보이는 것들도 간혹 눈에 띈다.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요, 그쪽 계통에서 일을 한 적도 없는 까닭에 나의 글쓰기 실력이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거리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매번 같은 언저리에서 맴을 도는 게 다이지만 가뭄에 콩 나듯 제법 그럴듯한 문장이 우연처럼 얻어걸릴 때가 있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했던 델리아 오언스의 장편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거의 다 읽었다. 생애 처음 쓴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소설이었다. 나는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느라 마음에도 없었던 병렬 독서를 해야만 했다. 

"평생 처음 혼자 맞는 밤이었다. 처음에는 숲속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몇 분에 한 번씩 일어나 앉아 차양문 밖을 살폈다. 한 그루 한 그루 모양을 낱낱이 아는데도 이따금 나무가 달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참 침도 못 삼키고 뻣뻣하게 굳어 있는데 때마침 청개구리와 여치가 친숙한 노랫소리로 밤을 채워주었다. 어둠은 달콤한 향내를 간직하고 있었다. 더럽게 뜨거운 낮을 하루 더 견뎌낸 개구리와 도마뱀들의 텁텁한 숨결, 습지가 낮게 깔린 안개로 바짝 다가왔고 카야는 그 품에서 잠이 들었다."  (p.26)


금세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행복도 불행도 다만 우리 삶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 요소일 뿐이라는 걸 어렴풋이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는 건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게 남았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삶에서 완벽한 이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여전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문장을 낙서처럼 끄적이고,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예전에 알던 누군가로부터 온 편지처럼 반갑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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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4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4-02-13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스럽게도 제가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 읽지는 못했고요.ㅋ

꼼쥐 2024-02-14 16:47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ㅎ
한 번 읽어보세요. 아주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다 읽으실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할 수도 있어요.
 
퀴팅 :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그만두기의 기술
줄리아 켈러 지음, 박지선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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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의 아시안컵 8강전 축구 경기를 시청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16강전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도 그랬고 이번 경기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후반전 막바지까지 끌려가다가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서야 겨우 동점골을 넣음으로써 연장전에 돌입할 수 있었다. 극적인 것을 떠나 지켜보는 국민들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후반전 추가시간도 거의 끝나갈 무렵, '졌구나' 하는 체념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순간에 터진 동점골. 텔레비전으로 시청을 하는 우리도 이럴진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하는 마음에 저절로 울컥해지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유행어처럼 쓰게 되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우리는 간혹 그릿(Grit)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안젤라 더크워스가 주창한 이 개념은 사실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s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줄임말이며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치는 투지 또는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성공'이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마치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처럼 끝없는 투지를 요구받기도 한다. 어떠한 이유로든 중간에 포기한다는 것은 '패배자' 혹은 '실패자'라는 낙인을 각오해야만 한다. 오늘 새벽에 펼쳐졌던 축구 경기도 다르지 않았다. 사력을 다한 선수들이 이제는 더 이상 뛰기 힘들다며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더라면 경기를 지켜봤던 많은 국민들로부터 그런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낙인은 그들이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벗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릿의 유무가 삶을 재단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인식에 의문을 갖길 바란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자유를 여러분에게 주고 싶다. 언제나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자유, 시작한 모든 일을 끝마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자유를 주고 싶다.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꺼이 그만두면 삶의 가능성은 확장될 수 있다. 이는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놓더라도 자신에게 기회가 많음을 믿는다는 뜻이다. 퀴팅은 희망으로, 내일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의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써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얻는다."  (p.38 '머리말' 중에서)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릿은 미덕이고 퀴팅은 죄악이라고 믿게 되었다. <퀴팅(Quitting)>의 저자인 줄리아 켈러는 이와 같은 우리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다가 그만두었던 경험, <시카고 트리뷴>에 입사해 기자로 일하면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그만두고, 8권의 소설 시리즈를 집필하여 자신의 작품이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던 경험을 되살려 <퀴팅>을 썼다. PART 1 '퀴팅의 과학: 뇌는 퀴팅을 원한다', PART 2 '만들어진 그릿의 신화: "이제 그만할래"는 어떻게 모욕적인 말이 되었는가', PART 3'퀴팅의 기술: 다시 시작하는 법'의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무책임한 조언을 하자는 게 아니라 시작했던 어떤 일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그만둘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를 냉철하게 결정할 수 있는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삶은 도박이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을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책에서는 정확히 그 반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 책에서는 삶이 무조건 자기 책임이라고 호언장담한다."  (p.154)


노력한다고 누구나 다 일론 머스크가 되지는 않는다. 온갖 노력을 쏟아부으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능력과 한계는 어렴풋이 밝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이 쏟았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혹은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두려워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그런 상황을 적어도 한 번은 맞닥뜨리게 된다.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낸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그동안 쌓아온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결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어려운 과정을 벗어나고 보면 새로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이 과거 자신이 누렸던 세상에 비해 좋을 수도 아니면 나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용서다. 매번 상황을 바로잡지는 않았던, 실패하기도 했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 실패할 테니까. 실패하고 계속 무언가를 그만둘 테니까."  (p.331 '맺음말' 중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궤변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시작하는 모든 일은 자의든 타의든 결국 그만두기 위함이다.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어느 누구도 간절히 원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인식하기 시작했던 어떤 순간, 계속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어떤 순간부터 우리는 죽기 위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우리는 죽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죽음 이후에 더 나은 삶을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게 다를 뿐이다. 단 한 번뿐인 삶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도 이와 같은 규칙을 적용하려 드는지도 모른다. 익숙하거나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자가 하는 일과 추구하는 바는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죄의식이나 열패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언제든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신중한 판단 기준도 없이 마구잡이로 그만두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만둘 시기를 하염없이 미루는 고지식한 사람이나 기준도 없이 수시로 그만두는 프로 이직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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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감옥에 갈 결심


겨울의 뒤꽁무니를 살금살금 밟아가면 꽃이 만발한 봄의 세계를 금세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포근한 주말입니다. 수컷멧돼지들의 발정기도 다 끝나가는 탓인지 다리의 힘이 풀리고 한낮에는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그게 어디 생각처럼 쉽기만 한 일이겠습니까. 나는 오히려 뒷골목 똘마니들과 마음껏 술이나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 작금의 상황을 잊은 채 몇 날 며칠이고 잠이나 잤으면 좋겠습니다. 리더 멧돼지인 나에 대한 지지율이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뇌물을 받은 아내 멧돼지에 대한 원성도 잦아들 줄 모르니 욱하는 성격의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입니다.


오늘은 전임 리더 멧돼지였던 그네 멧돼지의 생일인 까닭에 마음에도 없는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내가 뒷골목에서 똘마니들과 어울려 다니던 시절, 나는 동운 멧돼지와 함께 그네 멧돼지를 붙잡아 감옥에 처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암컷 멧돼지로는 처음으로 리데 멧돼지의 자리에 올랐던 그네 멧돼지는 몹시 낙담한 표정이었고, 그로 인해 리더 멧돼지의 자리도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던 나였지만 그네 멧돼지를 지지하는 많은 멧돼지들이 안면에 철판을 깔고 나를 지지하게 되었던 건 모두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상황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리더 멧돼지의 자리에 오른 나로서는 애시당초 그네 멧돼지에 대한 원한이 없었음은 물론 감옥에 처넣었던 건 단지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의 결과였다는 걸 밝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생일 축하 인사를 함으로써 나의 성격이 그렇게 모질거나 악랄하지는 않다는 걸 상징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게 이제 다 지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법을 제정할 입법 멧돼지들을 뽑는 선거가 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새로 선출된 입법 멧돼지들로부터 리더 멧돼지의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요구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나와 나의 아내 멧돼지는 물론 나를 지지했던 많은 멧돼지들이 감옥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나라의 전체 멧돼지를 위해서는 옳은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능력도 없고, 더 이상 리더 멧돼지를 하고 싶지도 않은 나로서는 감옥에 가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말입니다. 내일 모레는 봄이 온다는 입춘. 봄이 오면 모든 걸 내려 놓고 감옥에 갈 결심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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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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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보다 부업을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피디이면서 동시에 작가인 사람들도 섞여 있는데 김현우 피디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다큐멘터리 피디이자 번역가인 그는 작가로서도 손색이 없는 듯 보인다. 손색이 없다기보다 뛰어나다. 한 가지 일도 제대로 못하는 나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그런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도 없고... EBS 《다큐프라임》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 몇몇을 보더라도 그의 성품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피디와 작가는 서로 닮아 있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전달하는 매체가 영상과 언어라는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책 한 권으로 묶일 만큼의 글을 써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동안 뭔가가 정리되기는 했다. 글쓰기는 적어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직업이었다. 대충 삼십대의 시기와 겹치는 십여 년을 이렇게 정리해보고 나니 뭔가 더 분명히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그건 좀처럼 자신이 생기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p.253 '에필로그' 중에서)


작가의 본업인 다큐멘터리 기획 및 촬영을 위해, 그리고 잠시의 짬을 내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기록한 글을 책으로 엮은 <건너오다>는 작가가 다녀온 17개국 38개 도시를 선별하여 실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프랑스 파리나 영국의 런던 등도 있고, 미국의 로렌스, 앤아버, 미즐라와 호주의 마운트아니자, 필리핀 아닐라오 등의 이름도 생소한 도시들도 나온다. 특이한 것은 작가가 연출했던 작품 <김연수의 열하일기>의 배경이었던 중국의 변문진과 진황도 등의 기록도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일반 에세이스트라면 결코 닿을 수 없는 지명들이다.


"과거의 국경이었던 곳, 지금은 그런 과거를 전혀 모른 채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변문진의 일면산역에서, 경계를 넘는 방법을 생각했다. 경계를 건너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경계가 아니라 경계 앞에 선 나의 마음이다. 그것은 욕심이고, 욕심의 다른 이름인 미련 혹은 집착이고, 두려움이다. 장백산 담배 한 개비가 확인해준 사실이다."  (p.236)


육체의 성장은 시간과 영양을 공급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마음이나 영혼의 성장은 누군가로부터의 사랑이나 애정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거기에는 반드시 여행과 같은 개인의 적극적인 체험이나 노력이 덧붙여져야만 한다. 어느 낯선 여행지에서 아무런 까닭도 없이 삶의 허무나 고독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전보다 한 뼘 더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넓어진 마음의 여백을 지워지지 않는 삶의 의미로 채워가야 한다.


"상점이 모두 문을 닫아버린 나가사키의 도심을 폐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무도 그곳을 '버리지' 않았다. 폐허는 오히려 나의 마음속 정경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버리다'라는 단어는 어쩌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어감만큼 잔인한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버림은 어쩌면 무관심의 동의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건 '(버림받는 대상에 대한 악의를 품고) 망가뜨리다'의 의미보다는, '적극적으로 지켜주거나 돌보지는 않는다'의 의미에 가깝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적극적인 관심 혹은 애정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폐허가 된다. 상점들이 문을 닫은 나가사키의 도심에서 나의 마음이 '폐허'라고 느낀 것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였다."  (p.195)


작가의 사색이나 체험의 기록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은 어쩌면 그가 존 버거와 같은 대가의 책을 여러 권 번역하고, 그것을 의미가 통하도록 수차례 반복하여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밝혔던 것처럼 한 권의 책을 써냈다고 그의 삶이 크게 달라질 거야 없겠지만 영혼이 성장하는 만큼 넓어진 마음의 여백이 허무와 공란으로 남지 않고 무언가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성장하는 아이들의 키를 집안 문틀에 새겨 넣는 것처럼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다는 것은 영혼의 성장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이다. 작가는 그렇게 자신이 쓴 책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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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8개의 내륙현이 있고, 그 중 하나가 군마현입니다. 도쿄에서 100km 떨어진 마에바시시를 현청소재지로 하는 군마현은 해발고도 500m 이상의 산지가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하는 화산지대인 까닭에 쿠사츠 온천과 시마 온천 등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그러나 남동부의 토네강 유역에는 간토평야가 펼쳐집니다. 기이하게도 이 지역에서는 많은 만화가들이 배출되었으며, 2차대전 당시 일본 방산업체가 몰려 있던 곳 중 하나인 탓인지 나카소네 아스히로를 비롯하여 총리를 4명이나 배출한 극우 정치적 색채가 농후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이도 히로토 작가의 애니메이션 <너는 아직 군마를 모른다> 역시 군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우리나라 지리도 잘 모르는 내가 이웃 국가인 일본의 군마현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까닭은 다른 데 있습니다. 과거 태평양 전쟁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군마현으로 끌려가 그곳에 있는 공장과 공사 현장에 강제 징용되었음은 물론 일제에 의해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많은 분들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자기네 선조의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기 위해 시민단체가 설립한 한국인 희생자의 추도비를 철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게다가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배상 판결이 있을 때마다 일본 정부는 건건이 유감을 표명하는 것은 물론 윤석열 정부에 대해 제삼자 변제를 압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외교부는 한국인 징용 희생자의 추도비를 철거한다는 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도 뻥긋 안 합니다. '용산 총독부'다운 태도입니다. 게다가 가미카와 일본 외무상은 정기국회 외교 연설에서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에 근거해 의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11년 연속으로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셈입니다. 이와 같은 저자세 외교로 도대체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국민들의 화를 돋우는 데는 성공하였다고 하겠습니다. 확실하게 말입니다.


현 정부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강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굽실대고, 약자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심하게 대한다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순사와 같은 모습이지요. 그런 까닭에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재갈을 물리고 찬양일색의 언론사는 하나라도 더 챙겨주지 못해 안달입니다.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의 간사하고 무도한 태도를 바꿀 방법은 없겠습니다만 실질소득마저 감소하고 있는 국민 대다수의 하루하루는 견디기 힘든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검찰 조사를 받던 LH 전 직원 2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공포의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구명조끼도 없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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