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 (10만부 기념 행운 에디션)
박여름 지음 / 히읏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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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뭔가 급하게 서둘러야만 할 것 같고, 꼭 해야 할 일을 지금 내가 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곤 한다. 나의 생각이 말(言)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말(言)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이끄는 형국. 사람의 말(言)이란 묘한 구석이 있어서 오래 쓰다 보면 오히려 나의 생각보다 앞서서 끌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게 마련이다. '사랑해'라고 조용히 읊조리면 차갑기만 하던 손끝으로부터 미지근한 온기가 가슴을 향해 시나브로 밀려오는 것처럼.


박여름의 에세이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는 앉은자리에서 두어 시간이면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날개에서 찾을 수 있는 작가 소개글에는 '자주 울고 자주 웃는 사람/앞으로도 그러며/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문구가 사진과 함께 실려 있을 뿐 어떠한 신상 정보도 실려 있지 않았다. 다만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작가의 나이를 어렴풋이 짐작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작가는 이 책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여러 불안, 알 수 없는 슬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새로운 만남 등에 대하여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쓰고 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작가는 지금 푸른 청춘의 관문을 통과하고 있거나 그곳으로부터 멀리 지나쳐오지 않았을 듯하다.


"말이 어떤 이의 마음에 닿아 새싹을 틔우는 거름이 되기도 하고, 잘 자라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불씨 남은 담배꽁초 따위가 되기도 한다. 살아가며 우리가 할 일은 내 삶의 꽃을 피우는데 방해가 되는 꽁초나 쓰레기를 제때 줍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장식용으로 쓸 수 없다. 그런 환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절대 예쁜 꽃을 피울 수 없다."  (p.183~p.184)


작가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50여 가지의 소제목에 자신만의 감성과 철학을 담은 글을 덧붙임으로써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처진 어깨를 바로 세우고, 갈라진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준다. 사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은 그 시절의 감성에서 멀어진 까닭에 아련한 추억으로만 기억될 뿐, 작가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작가의 충만한 감성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생각에 공감하게도 된다.


"좋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 좋은 사람은 누구도 아프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 편해지자고 남에게 상처 줘서도 안 되지만, 남을 위해 나를 울려서도 안 된다. 몇 번의 성장통을 겪으며 적절히 마음을 배분하는 것, 그러다 아주 가끔은 나를 더 챙겨도 괜찮은 것, 그게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p.213)


지나고 보면 젊은 시절은 정말 빛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갔음을 깨닫게 된다. 청춘이란 어쩌면 벼락이 치는 순간처럼 짧고 선명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귀한 순간을 아무것도 아닌 양, 하수구에 물을 흘려보내듯 너무도 쉽게 보내버리는 건 아닌지... 내일 당장 죽을 것처럼 사랑도 하고,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청춘을 청춘답게, 청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붙잡아둘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처럼 나이가 든 꼰대(?)들은 누구나 비슷한 어법으로 훈수를 늘어놓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시련이나 아픔은 당사자에게는 타인과 견줄 수 없는 크나큰 상처이자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절망의 빙벽이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 모든 게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였음을 깨닫게 된다.


"헤어지자는 얘기를 했을 때 그들은 모두 기회를 달라 말했고, 나는 돌아갔다. 하지만 사랑을 몇 번 해봤다면 모를 사람은 없지. 이미 한 번 문제가 생긴 관계는 구멍 난 풍선에 바람을 부는 꼴이라 언젠간 지쳐 다시 끝이 나게 되어 있다. 나는 그 풍선을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예쁘게 불고 싶었는데."  (p.18)


벚꽃이 피고 지는 계절. 거리에는 봄을 즐기려는 연인들로 가득하다. 변덕스러운 꽃샘추위를 견뎌온 봄은 이제 한낮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초여름 날씨로 향하고 있다. 왔는가 싶었던 봄은 이처럼 빠르게 흘러 사라진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마냥 길게만 느껴지던 청춘의 관문도 지나고 나면 흩날리는 저 벚꽃잎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 흔적만 겨우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가는 봄이 아쉬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그 헛된 수고가 매년 봄마다 이어지고 있다. 박여름의 에세이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는 마음이 헛헛한 사람들을 다독이며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봄이 가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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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 - 인간의 구매 행동을 유발하는 뇌과학의 비밀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지음, 구소영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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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귀찮고 하기 싫어서 마냥 뒤로 미루기만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뭔고 하니 바로 쇼핑이다. 남들은 꼭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 쇼핑을 하기도 하지만 힘들었던 하루의 화풀이로 혹은 물건을 사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겸사겸사 쇼핑을 즐긴다고도 하는데, 나는 이거고 저거고 간에 쇼핑 자체를 싫어하는 까닭에 웬만하면 견디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닥다리 물건도 우리 집에서는 각각의 소임에 맞는 역할을 오래도록 지속할 뿐만 아니라 귀한 대접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이 세상에 나처럼 중증의 쇼핑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들만 있다면 모든 기업들이 굶어 죽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듣고는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나와 반대되는 성향의 쇼핑 중독자들이 차고 넘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처럼 쇼핑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과 중독 수준으로 쇼핑을 즐기는 사람의 성향이 나뉘는 까닭은 무엇일까.


독일 경제계의 권위자이자 심리학자인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박사에 따르면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이성보다 감정에 훨씬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내가 쇼핑을 싫어하는 게 어떤 합리적인 근거로 인해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단순한 감정, 그저 쇼핑이 귀찮고 싫다는 감정으로 인해 그렇게 행동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박사가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그가 15년간 뇌과학과 심리학, 마케팅을 연구한 끝에 알아낸 결과이다. 뇌의 감정 처리 영역이 손상된 환자는 결정을 제대로 내릴 수 없으며, 감정이 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현대 과학이 내린 결론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얼마나 감정에 영향받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뇌과학을 통해 감정이 우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고 이를 시장에 대입할 수 있는 마케팅 방법을 소개하려 한다. 이 기법은 심리학과 뇌과학, 경제학이 합쳐져 탄생한 것으로 신경마케팅이라 불린다. 소비자의 무의식 속에 있는 감정을 강화하는 마케팅이라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p.6 '서문' 중에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 역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경제학에서는 소비자를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소비자가 과연 합리적인 존재일까 하는 데는 늘 의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대부분의 나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본능이나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게 대부분인데 합리적이라니... 물론 그런 가정이 없다면 어떤 이론에 도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에 합리적인 소비자를 가정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아무튼 나의 행동은 합리적인 구석은 없는 듯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경제학이 발달하면서 소비자의 구매 의사를 결정하는 데 많은 요소가 작동한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감정이 담긴 이미지와 언어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과 감정적인 뇌가 항상 증거와 근거를 원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뇌는 제일 먼저 감정적인 보상을 찾는다. 이후 주로 비교와 정당화 단계를 거친다. 소비자가 구매 후 제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기업이 많다. 우리 이성은 감정이 만드는 반응을 개선하고자 하며, 그러기 위해 확실한 약속과 근거를 필요로 한다. 근거 역시 통제 동기라는 감정적 요소에 속하지만, 좀 더 복잡하다. 품질 인증 마크나 명백한 품질 검증 결과는 강력한 감정 강화제로서 통제 동기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조성한다."  (p.145)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박사가 쓴 <뇌, 마케팅의 비밀을 열다>는 고객의 뇌 속에 숨겨진 감정적 구매 버튼을 찾아 누르고자 할 때 필요한 뇌의 감정 시스템과 기능을 알고자 하는, 이를테면 철저한 실무 중심의 책이다. 제1장 '오직 감정만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이유', 제2장 '감정적인 뇌가 기능하는 방식', 제3장 '브랜드, 고객이 인식하는 내적 가치와 동기', 제4장 '디자인, 작은 차이가 돋보이는 제품을 만든다', 제5장 '상업, 쇼핑의 5가지 감정 유형', 제6장 '온라인 쇼핑, 사용자경험을 최적화하라', 제7장 '서비스, 어떻게 다양한 기대를 모두 만족시킬까', 제8장 '고객 맞춤 전략, 목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 제9장 'B2B, 엔지니어도 사람이다', 제10장 '고객과 직원을 활용한 감정 강화 전략'의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다양한 그림과 도표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카톨릭교회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 감정 문화 및 브랜드 강화 전략은 원칙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뇌과학 연구를 통해 이 전략이 어떻게 그리고 ㅙ 효과적인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강력한 브랜드와 종교가 활성화하는 뇌의 구조가 거의 같다는 사실은 놀랍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강력한 브랜드가 종교를 대체하기도 하고 종교 역시 강력한 브랜드와 비슷한 전략을 세우기 때문이다. 완성도 높은 감정 강화 전략은 브랜드를 일관되게 연출하여 감정적 의미 구조를 만들고 이를 모든 고객 접점에 적용하는 것이다."  (p.324)


감정은 우리에게 무엇이 의미 있고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감지기 역할을 하는 까닭에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작동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감정은 안전을 추구하는 균형 시스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극 시스템, 권력을 추구하는 지배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다. 이를테면 자극 시스템이 발달한 유형은 주로 새로운 것에 매료되는 얼리어답터가 많고, 균형 시스템이 발달한 사람은 KC 마크처럼 신뢰감을 주는 제품을 선호하며, 지배 시스템이 강한 사람은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므로 고가품이나 희귀품에 감정이 움직인다.

 
최근에 보고된 감정 강화 마케팅의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마케터는 전통적인 이론에 의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대다수의 소비자가 합리적일 것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따라서 할인이나 제품의 기능만 강조할 뿐 제품이 주는 감정적 만족감을 등한시하는 측면이 있다. 결국 인간은 고전적 경제 이론서의 행동과 양태에 따라 구매 의사를 결정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걸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제각각 다른 감정을 느끼겠지만 감정 시스템에 따라서는 몇 가지 비슷한 유형으로 묶을 수 있는 까닭에 이를 알고 실전 마케팅에 적용한다면 유능한 마케터로 재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책을 읽는 독자의 직업이 마케터가 아닐지라도 자신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어떤 것에 매력을 느끼는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익하다 하겠다.

오늘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마지막 사전투표일. 나치 독일 시기에 반나치 활동을 했던 루터교회 목사 마르틴 니묄러의 말을 옮겨 본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의 정치적 의사를 대신할 국회의원조차 어떤 감정에 의해 선택할 수는 없다. 어쩌면 정치에서 만큼은 우리는 철저하게 고전 경제학 이론을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정치 소비자는 모두 합리적이라는 가정. 그 가정이 단순한 가정에서 그치지 않고 선거 결과 역시 현실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도 우리의 감정 시스템이 알게 모르게 작동하고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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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 투표소를 찾았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첫날. 투표를 하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회사에 묶인 사람들이 휴일도 아닌 평일에 투표를 위해 시간을 낸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일 터, 시간이 자유로운 노인들과 주부, 혹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한산한 시간을 이용하여 투표장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만개한 벚꽃이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 서서히 지고 있었다. 주말의 여유로움이 한껏 내려앉는 봄의 뜨락에 게으른 봄 햇살이 나릇나릇 번지고 있었다.


현실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는, 정신이 온전한 사람들은 여당인 국민의힘을 절대 지지할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간혹 있는 듯했다. 그들은 어쩌면 봄마다 헛심을 쓰는 저 도시의 벚꽃처럼 자신의 노력이 무위로 끝났음을 실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까닭은 새 생명의 싹을 틔우기 위함인데 아스팔트 포장이 된 도시의 가로수는 아주 잠깐 사람들의 눈만 즐겁게 할 뿐 본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헛심만 쓰는 꼴이 아닌가.


박여름의 에세이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한때는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연습만 하면 받아쓰기 백 점은 쉬웠고 꾸준히 좋아하던 누군가에게 받는 답장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어른이 되어 보니 아니더라. 어떤 일에서 1등을 하는 건 시간을 쏟는다고 해서 무조건 되는 일이 아니었고 때로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날 가장 많이 울리기도 했으니까. 기다리면 될까. 기다리면 올까. 하염없이 목 내밀어 봐도 버스가 오지 않아 물어보니 막차는 떠났단다. 하지만 내 잘못 아니다. 다만 오늘 운행하는 차가 끊겼을 뿐이니까. 까만 밤 잘 보내고 나면 또다시 오겠지. 그때 졸지 않고 잘 나아갈 준비를 하면 되겠지. 사는 게 참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좋은 날 좋은 기회는 또 올 거다."  (p.30~p.31 '첫차' 중에서)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지만 우리 곁에는 여전히 타인의 슬픔을 내 것인 양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고,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에서 우산을 들고 묵묵히 함께 걸어 줄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 10주기! 그렇게 우리는 10년을 버텨왔다. 벚나무가 헛심을 쓰는 도시 가로수길의 분분한 낙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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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05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했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인용하신 문장 넘 좋네요~

꼼쥐 2024-04-05 16:48   좋아요 2 | URL
책의 제목처럼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봅니다. 낮 시간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할 수 있었어요. 좋은 일이 있어야 할 텐데...

렛잇고 2024-04-05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하고 왔어요!! 사전인데다 첫 날인데도 많으시더라고요. 투표 후기 글 올려주시니 반갑네요~~😃😃

꼼쥐 2024-04-05 17:34   좋아요 1 | URL
렛잇고 님도 오늘 사전투표 하셨군요. 저는 내일 약속도 있고 바쁠 듯해서 오늘 하고 왔어요. ㅎ 생각보다 많기는 했어요. 좋은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김동신.신연선.정세랑 지음 / 북노마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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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책이 좋아서'라고 하면 '하필'이라는 부사에 먼저 눈길이 쏠린다. '그 많고 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책을 좋아하다니!'라는 한탄과 함께 '다른 좋은 것도 많은데'라는 선행 어구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말하자면 '하필 책이 좋아서'라는 말 속에는 말하는 이의 가치 판단이 함께 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책'이라는 무용한(혹은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허비(?)하는 것에 대한 자조가 짙게 배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처럼 '하필'이라는 단어 속에 깃든 여러 의미를 모를 리 없을 텐데 굳이 이 단어를 쓴 데에는 어떤 특별한 까닭이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역시 이미지는 좋지만 결국 돈은 안 되는 게 책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책을 주제로 하는 TV 프로그램이 꾸준히 생기면서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어떤 유명인이 읽고 있다는 책에는 반짝 관심이 쏟아지지만 그 책이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징검돌 역할은 하지 못하는 것도 같고. 전직 대통령이 국내 최고의 출판 마케터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실정이니 출판 시장 진짜 어떡하지......"  (p.213~p.214)


<하필 책이 좋아서>의 저자인 세 사람은 '하필 책이 좋아서'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가장 느린 미디어인 책을 만드는 일에 열정과 정성을 다하는 이들. 그러나 그들에게도 갈등과 머뭇거림의 순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 저작, 편집, 디자인, 홍보, MD, 콘텐츠 제작 등 한 권의 책이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하나의 상품으로 완성되어 판매될 때까지의 과정과 단계들이 여느 상품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열정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이들 세 작가의 시선은 '출판계' 안쪽을 향하기도 하지만 책의 인기가 날로 시들해지는 '출판계 바깥의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하소연이기도 하다.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시선으로부터> 등 쓰는 작품마다 독자들의 사랑과 주목을 받고 있는 정세랑 작가의 주도로 출판사 홍보 기획자로 로 일하다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연선 작가, 출판사 돌베개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현재는 기획자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신 작가와 함께 쓴 이 책은 책을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좋아하는 동료들과 작은 책을 쓰고 싶었다. 신연선 작가, 김동신 작가에게 손을 내밀었더니 흔쾌히 맞잡아주었다. 세 사람 모두 10년 차에서 20년 차를 향해 기고 있는 업계의 허리 세대에 속한다. 꾸준히 걸어왔지만 남은 길도 많은 상태에서 방향을 가늠하는 이야기를, 그다지 무겁지 않게 해보고 싶었다."  (p.7 '들어가는 말' 중에서)


추천사, 증정본, 개정판, 리커버, 굿즈 등 출판사와 함께 작가가 결정해야 하는 것들에서부터 작가에게 오는 강연 요청이나 문학상 심사 등의 문제, 젠더, 환경, 문화 정책, 취향, 북디자인, 로고, 계약(서), 기획, 홍보, 마케팅, 베스트셀러, 브랜딩, 덕질 등 독자들은 모르고 있거나 관심 밖에 있는 문제들이 가벼운 터치로 다루어진다.


"책은 대표적인 다품종 소량 생산 상품이지만 예상치 못한 악성 재고는 발생하기 마련이며, 유통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파본도 생긴다. 파쇄해버리기에는 아까운 책들을 어떻게 판매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책이 살짝 구겨지거나 더럽혀져도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인데, 못난이 과일을 즐겨 먹는 소비자가 있는 것처럼 차본을 파쇄에서 구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도 있을 것이고 효율적인 연결 방법을 생각해보고 싶다."  (p.72)


오늘은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 밖에는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고 만개한 목련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가 문득 떠오른다. 오늘처럼 궂은 날씨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귀가를 서둘렀고, 방에 배를 깔고 엎드려 학교에서 빌려왔거나 친구에게서 빌려온 책을 붙잡고 밤이 깊을 때까지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곤 했다. 아귀가 맞지 않아 벌어진 문틈으로 스며드는 비 비린내와 똑똑 처마에서 떨어지는 밤의 낙수 소리.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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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한 시각에 아침이 오고, 낮고 부드러운 봄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는 주일의 아침. 게으름이 둥둥 떠다니는 이 방의 주인은 일어날 줄 모르고 코끝을 간질이는 봄꽃 향기에 놀라 기지개를 켜며 늦은 아침을 맞는다. 몸만 빠져나온 침구를 정리하고,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고, 미련이 남은 듯 다시 한번 하품을 한다. 시나브로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자욱하던 황사 먼지는 완전히 사라져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막 벚꽃이 피는데 겨우 하루가 남은 3월.


총선이 멀지 않았다. 사전투표를 생각하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셈이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주변에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경제가 이 모양인데 국민의힘을 찍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지요. 똑바른 정신으로 우째 국민의힘을 찍겠어요?' 하는 말. 망가진 게 어디 경제에 국한되는 것일까마는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정 시스템 전반이 무너졌는데 그에 대한 반성도, 앞으로의 대책도 없다는 데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3년도 가기 전에 나라가 망할 거라는 우려가 온 나라, 전체 국민의 가슴에 팽배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부와 여당을 지지한다는 건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산골 무지렁이나 할 짓이 아닌가.


어제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한 명과 점심을 같이 했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는 IMF 외환위기 때만 하더라도 약국 매출은 더없이 좋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아파도 약 사 먹을 돈도 없는지 약국 매출마저 떨어지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빈 상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견디다 견디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떠난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살 만하다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이렇듯 죽는소리를 하는데 맨몸뚱아리 하나로 세파와 맞서 싸워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막막할까. 이런 사정도 모른 채 대통령이라는 자는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헛소리나 하고 있고...


철학자 서동욱의 저서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읽고 있다. 재미있는 책이다. 책에 있는 한 구절을 옮겨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못 참으며, 특히 자신이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할 자유(즉 철학함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가장 못 참는다. 이런 자연적인 자유를 국가가 침해하려 할 때 국가는 자유의 침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안녕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둘 때 얻어질 수 있다.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 담긴 핵심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이다."  (p.147~p.148)


'MBC는 잘 들어'라면서 언론인에 대한 군부 독재 시절의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던 황 모 씨가 떠오른다.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17세기의 철학자도 알던 사실을 400년이나 지난 21세기의 그는 왜 몰랐을까. 그렇게 하면 국가가 전복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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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04-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가 있네요. 대파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에 875원입니다.
- 범죄 심리 전문가 프로˝파˝일러 올림 -

꼼쥐 2024-04-03 16:2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잉크냄새 님 덕분에 프로파일러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알고 보니 프로‘파‘일러는 파 전문가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