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으로 퍼지는 물동그라미의 시선을 느껴본 적 있을까요. 수면에 떨어진 위험을 감지한 물 분자들이 서로 어깨를 겯고 원을 그리며 밖으로 밖으로 퍼져가는 모습. 나는 수면에 번지는 물동그라미의 파문을 볼 때마다 이상의 시 <오감도>를 떠올리곤 합니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로 시작되는 이상 시인의 대표작 말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아이(兒孩)들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반복하여 말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불안의 동시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에 퍼지는 물동그라미의 파문도 어쩌면 불안을 감지한 물 분자들의 감응이 수면 위에 작은 파장으로 그려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현 정부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이는 강고한 공권력의 강압으로 인해, 또 어떤 이는 경제적 어려움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또 어떤 이는 죽음과 같은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 등 그 원인은 서로 다르겠습니다만 수면에 물동그라미의 파문이 일 듯 불안의 파장이 멀리멀리 퍼져나간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불안의 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죽어가는 보랏빛 속에서 하루가 흐르며 저물어간다.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으리라. 내가 누구였는지 아는 사람도 없으리라. 나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미지의 산에서 미지의 계곡으로 내려왔다. 내 발자국은 저녁이 느리게 도래할 무렵 숲 속 개활지로 나 있었다. 내가 사랑한 모든 이가 그늘 속에 남겨진 나를 잊었다. 마지막 배에 관해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누구도 쓰지 않았을 편지에 대해서, 우체국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굿바이(Good bye)'가 '굿날리'로 되는 세상, 그렇게 발음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압수수색을 당할 수 있는 세상, 우리는 집권자의 이러한 허무맹랑한 태도에 분개하면서도 자신에게 닥칠 막연한 불안을 떨쳐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듯합니다. 게다가 북극한파가 맹위를 떨치는 오늘 지나는 행인들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종종걸음을 칩니다. 우리는 그렇게 물동그라미의 파문처럼 서로 어깨를 겯고 불안의 시기를 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