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I Believe'를 다시 듣는다는 건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입니다. 이런 날, 낫살이나 먹은 어떤 인간은 "군불을 넉넉히 땐 뜨끈한 아랫목이 생각난다"고도 하고, 솜털이 보송한 어떤 계집아이는 "경치 좋은 스터디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기에 좋은 날씨"라고도 했습니다. 우리 멧돼지 세계에서는 천차만별의 날씨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게 '국룰' 아닌 '국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연약한 인간들처럼 날씨에 따른 특별한 감상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따금 한국인이 사랑한다는 어느 축구감독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기이한 자세로 따라 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마저도 "멧돼지가 오죽이나 할 짓이 없으면 인간을 다 따라 하느냐"는 타박을 계속하여 듣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날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겁도 없이 다른 멧돼지가 주는 뇌물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 챙겼던 아내 멧돼지의 행실이 알려지면서 조사를 하여 죄가 있으면 벌을 주자는 주장이 들끓고 있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사실 아내 멧돼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형적인 '아내 바라기'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은 나와 가까운 주변의 모든 멧돼지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명목상으로는 내가 리더 멧돼지인 듯하지만 실상은 아내 멧돼지에 의해 모든 게 진행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내 멧돼지를 조사하여 죄가 있으면 감옥에 보내자는 주장은 일견 타당한 듯 보이지만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멧돼지들을 통솔할 리더 멧돼지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까닭에 나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내가 리더 멧돼지로 남아 있는 한 말입니다. 여러 멧돼지들의 주장이 온 나라를 뒤덮어도 그것을 수용한다는 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지요.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어느 인간 가수가 불렀다는 'I Believe'를 다시 듣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 멧돼지를 감옥에 보낸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으로 아내 멧돼지의 사과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I Believe'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조신한 태도로 무대에 올라 내조에만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면 강경한 주장을 하던 여러 멧돼지들의 주장도 조금쯤 사그라들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비록 악어의 눈물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4-01-20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더 멧돼지는 끊임없이 충격적인 소재거리를 제공해 주는군요.
콘텐츠가 마를 날이 없습니다.

꼼쥐 2024-01-20 15:59   좋아요 1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걸 기쁘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우리나라 경제와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은 언론에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와 같은 말은 다수의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우리나라 언론의 기형적 성장 과정에 있다. 정권에 기생하여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정권의 눈치를 보는 수준을 넘어 정권을 찬양하는 수준에 이른 언론만이 정권으로부터 여러 혜택을 보며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의 저변에는 언론사의 지배구조의 문제에 있다. 외형적으로 언론사의 지배구조는 사적 지배구조와 공적 지배구조가 명확하게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 개인이 주식을 보유하는 주식회사는 사적 지배구조이고 공공이 주식을 보유하거나 공공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은 공적 지배구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KBS와 뉴스타파를 제외한 모든 언론사는 모두 예외 없이 주식회사이다. 그러나 한겨레 신문처럼 국민주 형태로 공모된 소액주주가 72%의 지분을 소유한 언론사에 있어 사유화 문제가 직접 야기되지는 않는다. 공적 재원인 시청료가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KBS가 공적 지배구조 형태를 띠면서도 공공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회사의 대표를 선임하는 이사회 구성이 정치권력에 의해 이루어짐에 따라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이사회 구성이 바뀌고, 그에 따라 대표의 성향도 바뀌며, 자동으로 보도 운영자들의 구성도 180도로 바뀌는 기형적인 체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언론사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적 기관이 아니라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본주의 선봉 기업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정부를 찬양하는 어떤 기사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며, 그럴 준비가 늘 갖추어져 있다. 비록 국민들에게 눈총을 받거나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다시 일어난다면 우리나라 언론의 90% 이상이 식민 지배를 찬양하는 기사를 연일 쏟아낼 것이라고 본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외모를 추켜세우는 기사 축에도 속하지 않는 기사를 연일 쏟아내거나 논리에도 맞지 않는 대통령의 언사를 어떻게든 감춰주려는 야바위 기사들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가 망조에 들었구나, 하는 한탄을 아니할 수 없다.


오늘만 보더라도 그렇다.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 주제로 대통령의 '국민과 함께 하는 민생 토론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공매도 금지 가 일시적인 총선용 조치가 아니며 확실한 부작용 차단 조치가 구축되지 않으면 (6월까지 공매도를 금지하기로 했지만 그 이후에도) 다시 재개할 뜻이 우리 정부는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주가 지수는 큰 폭으로 하락하여 '블랙 웬즈데이'의 오명을 떠안았다.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라고 자처하던 대통령이 경제 성장의 뒷배가 되기는커녕 경제 악화의 주범으로 인식되는 셈이다. 무슨 말만 하면 반대의 성과를 내는 것이다. 과학 발전에 대해 언급하면서 R&D 예산을 깎고, 요양 보호를 강조하면 그에 대한 혜택은 대폭 줄어드는 식이다. 그럼에도 조, 중, 동을 비롯한 언론사 대부분이 정부나 대통령을 찬양하는 기사로 연일 도배를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에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든 것이다. 날씨가 궂다. 다들 감기 조심하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4. 2024년도 어그레시브하게 뛰어보자


소맥 한 잔이 생각나는 화창한 주말입니다. 리더 멧돼지를 꿈도 꾸지 않았던 뒷골목 시절의 나는 이런 날이면 으레 나를 따르는 똘마니들 몇몇과 함께 서울의 근교로 나들이를 나가곤 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자리에는 언제나 술과 젊고 예쁜 암컷 멧돼지들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하자면 뒷골목의 신참 똘마니들의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꽤나 큰 비용이 들게 마련이지만 우리들 월급이 축나기는커녕 술에 떡이 되어 돌아오는 우리들 각자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몇 달치 월급보다 많은 두툼한 봉투가 들어 있곤 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꿈같은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 시절의 여러 장면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곤 합니다.


그 시절 나와 가깝게 지내던 뒷골목 똘마니들을 제외하면 많은 멧돼지들이 나에 대해 오해하는 몇 가지 편견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내가 평상시에 말이 없고 과묵할 것이라는 편견입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조잘조잘 말이 많았던 탓에 나를 아끼는 이웃의 어른들이나 부모님으로부터 '덩칫값도 못 하는 놈'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덩치에 걸맞게 말을 줄이라는 뜻이었지요. 두 번째 편견은 내가 술이 셀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뒷골목 시절의 과거에는 약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운동을 싫어하는 탓에 주야장천 술만 먹고 체중 관리를 등한시했던 나는 이제 소맥 몇 잔만 마셔도 필름이 끊기곤 합니다. 또 하나의 편견은 내가 자식이 없는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합니다. 암컷 멧돼지 보기를 돌 보듯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나는 젊고 예쁜 멧돼지만 보면 마음이 동하곤 합니다. 저질 체력이라서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말이 많았던 나는 리더 멧돼지가 된 뒤에도 여러 구설수에 올랐던 전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법에도 맞지 않는 나의 어벙벙한 말이 비난을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다년간의 음주로 인한 알코올성 치매를 앓고 있는 것이 어휘 선택에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치매라는 병이 과거의 기억은 오히려 또렷한데 최근에 있었던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다른 멧돼지들이 그 뜻을 알기 어렵다고 했던 몇몇 문장을 들어 보자면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레귤레이션이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등입니다. 내가 한 말이지만 나로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024년 갑진년도 어그레시브하게 뛰어보겠습니다!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일과 시간의 절반은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의 시간은 식사량만큼의 무거워진 체중 탓인지, 누군가 시곗바늘에 껌딱지라도 붙여 놓은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식곤증으로 인한 인지 부조화 탓인지 오전에 비해 시간은 현저하게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다. 1시간쯤 흘렀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확인해 보면 30분을 겨우 지나고 있고, 적어도 30분은 지났을 거야 하면서 쳐다보면 간신히 10분을 넘겼을 뿐이다. 이렇게 시계만 쳐다보는 날이면 퇴근 후에 기다리는 약속이 있느냐는 둥 괜한 트집을 잡히기 일쑤이다. 나는 단지 천천히 흐르는 시간에 뿔이 나 있을 뿐인데...


오늘도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뿌연 하늘이 며칠째 이어지다 보니 우리나라도 이제는 유럽의 겨울 날씨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은 느낌이 든다. 뿌옇게 흐린 하늘을 보면서 마음마저 괜스레 우울하고 답답해지는... 며칠 전 유럽 출장을 다녀온 친구와 잠시 시간을 내어 수다를 떨었다. 물가가 어찌나 비싸던지 웬만한 식당에선 다른 음식을 추가로 시키는 게 부담스러울 지경이라고 했다. 숙박비 역시 다르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모텔보다도 못한 호텔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니 삭신이 쑤시고 결린다며 엄살을 떨었다. 유럽의 물가가 오른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원화의 국제 가격이 상대적으로 크게 떨어진 탓일 게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악화된 탓에 환율이 오르고 다른 나라에서 원화가 맥을 못 추는 것이리라. 이제 우리는 우리보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나라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현실에 처한 것이다. 지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눈 떠 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이제는 눈 떠 보니 후진국'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셈이다. 지도자를 잘못 뽑은 대가 치고는 너무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게 아닌가.


고명재 시인의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부사는 부연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하죠. 하지만 그렇게 부차적인 말이나 부수적인 표현이 누군가에겐 목숨만큼 얻기 어려운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문장을 쓸 때 부사를 빼라는 문장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아요. 인생은 '너무'와 '정말' 사이에서 춤추는 일이니까요. 우리는 부차적인 것들 때문에 울고 웃으니까요.)"  (p.53)


'너무'와 '정말' 사이에서 춤추는 모든 이에게 이 나른한 오후에 '비타500'의 활력을 드리고 싶다. 마음으로나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미세먼지로 감싸였던 도시의 표피를 한 겹 도려낸 듯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도시 상공에 걸렸습니다. 소한 추위는 꿔서라도 한다는데 그것도 옛말인 듯 겨울 햇살을 받은 대기는 온통 따사롭기만 합니다. 나는 안희연 시인의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손에 들고 산책을 나섰습니다. 휴대폰도 자가용도 없던 먼 옛날의 기억이 다가옵니다. 외출을 할라치면 언제나 한두 권의 책이 필수품처럼 여겨지곤 했던 그닥 멀지 않았던 과거. 그 시절 학교 앞 서점에서 인기를 끌었던 책은 손에 쏙 들어가는 포켓북과 두께가 얇은 시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쩌면 책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까닭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가며 구입하던 한두 권의 책값도 지갑이 얇은 학생들에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천상병 시인의 시집을 생일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아슴아슴 떠오릅니다.


캐치볼

                    안희연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

불타는 공이었다


되돌려 보내려면 마음의 출처를 알아야 하는데

어디에도 투수는 보이지 않고


언제부터 내 손엔 글러브가 끼워져 있었을까

벗을 수 없어 몸이 되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알 수 없겠지 이 모든 순서와 이유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니까


나에게 다정해지려는 노력을 멈춘 적 없었음에도

언제나 폐허가 되어야만 거기 집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왔을 것이다

불행을 막기 위해 더 큰 불행을 불러내는 주술사처럼

뭐든 미리 불태우려고

미리 아프려고


내 마음 던진 공을

내가 받으며 노는 시간


그래도 가끔은

지평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


불타는 공이 날아왔다는 것은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글러브를 단단히 조인다


잔디밭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감상합니다. 저마다의 표정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습니다. 꼬닥꼬닥 마른 나뭇잎이 비행을 하듯 날아와 내 발치에 떨어집니다. 쏟아지는 졸음에 가져갔던 시집은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가방에 넣고 말았습니다. 동글동글한 아이들 웃음소리가 비탈을 굴러 저 멀리 달아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