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드롭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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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비슷한 시기에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몰아서 읽게 되었다. 얼마 전에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를 읽었는데 그녀의 여행 에세이 <여행 드롭>을 또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에세이에 있어서 만큼은 일본 작가의 작품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예컨대 나쓰메 소세키나 마루야마 겐지와 같은 예전 작가의 에세이도 종종 읽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나 에쿠니 가오리, 무레 요코나 마스다 미리의 작품도 자주 읽는다. 언젠가 나의 블로그에 쓴 적도 있지만 일본 작가의 에세이는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책을 읽는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야만 해'가 아니라 단순히 '책을 읽는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이야' 하는 식이다. 감정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장면을 보고 그냥 슬펐을 뿐이지 나는 너무 슬펐기 때문에 책을 읽는 당신도 역시 슬퍼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작가의 경우에는 다르다. 감정이나 주장에 있어 일본 작가에 비해 적극적이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어쩌면 두 나라의 국민성이 에세이라는 장르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에쿠니 가오리의 <여행 드롭>은 여행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여행 스케치이다. 개인적으로 혹은 업무차 다녀온 여행과 어느 날 문득 일상에서 떠오른 그날의 추억. 여행의 묘미는 정작 떠나기 전의 설렘이 팔 할이라면 다녀온 후의 회상이 나머지 이 할을 차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리고 여행지에서 겪었던 낯선 경험과 힘들었던 일들은 마음속 그리움으로 번지기 일쑤이다.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여행에 대한 추억이 가슴 한편을 먹먹하게 물들일 때 우리는 다시 습관처럼 여행을 계획하곤 한다.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기분은 최고다. 밖은 비, 그러나 온천물은 따끈하다. 빨래 걱정도 없고, 저녁거리를 사러 나갈 필요도 없다. 눈앞에 펼쳐진 산속 나무들은 젖어 좋은 냄새를 풍기고, 이파리들은 선명한 초록이다. 극락. 비 내리는 날의 온천물은 화창한 날보다 부드럽고, 피부에 촉촉하게 스미는 느낌이다. 노천탕 전체의 부연 공기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p.77)


여행지에서의 생각은 일상의 그것과 사뭇 다르게 흘러갈 때가 많다. 시간에 대한 관념도, 일정이나 계획한 일에 대한 조바심도, 나를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시선도 때론 무감하게 느껴지곤 한다. 생각이란 게 도무지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처럼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멋대로 흩어져 나란 존재는 금세 쓸모없는 어떤 것으로 전락하곤 한다.


"어쩌면 나는 경유하기 위한 시간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그 장소는 출발지도 아니고 목적지도 아니다. 시간은 출발 후도 도착 전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딘가에 홀연히 나타난 시공간, 게다가 외국. 경유하는 공항에 있을 때면, 나는 나 자신을 그곳에 분명히 있지만 없는 존재로 느낀다. 그리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럴 마음만 있으면 목적지가 아닌 장소로도 갈 수 있다고."  (p.104)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꼬맹이로 돌아가는 기분이다’라는 작가의 생각에 우리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게다가 마음에 맞는 일행이 한둘 섞이기라도 하는 날엔 그런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나의 사회적 위치와 책무 같은 것들은 저 멀리 걷어차게 된다. 오직 나 자신과 여행을 함께 하는 여행의 동지,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 이제 막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낙조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얼굴들이 영상처럼 떠오를 뿐이다. 제어력을 잃은 과다 증폭된 감정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분출된다.


"여행을 좋아하는데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반갑고 안도하는 것은 왜일까. 돌아오면 집 안 청소를 해야 하고, 우편물도 메일도 팩스도 잔뜩 쌓여 있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어 장을 보지 않고는 먹을 것도 만들 수 없는 상태인데. 가족을 만날 수 있어서 그렇다, 하는 대답은 옳지 않다. 가족과 함께 여행한 경우에도 집에 돌아오면 안도하니까. (......) 규슈나 홋카이도, 미국이나 유럽 등, 여행을 좋아해서 아무튼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실제로 반복해서 떠나 보고 듣는 것, 만나는 사람, 먹는 음식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겨 벅찬 가슴으로 역이든 공항에서 여행 가방과 함께 돌아오면 집이 아직 거기에 있고, 게다가 여전히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 놀랍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반갑고 안도하는 것은 매번 그 사실에 감동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154~p.156)


다시 또 주말. 금세 봄이 올 것만 같던 날씨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폭설 속에서도 꽃은 피고, 시간의 과묵함 속에서도 아이들 재잘거림이 나이테에 새겨질 테다. 우리는 그렇게 한 뼘 성장한 아이들을 대동하고 벚꽃 흐드러진 어느 강변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그 거리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여행 드롭>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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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Blu (리커버) 냉정과 열정 사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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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싸움에서도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서는 누구의 잘못이 큰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사람은 늘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유불리를 따져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숨기거나 축소하게 마련이니까. 그와 같은 방어기제는 누군가로부터 학습을 통해 습득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선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싸움의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는 사랑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사랑도 싸움도 집단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 수단에서 비롯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일본의 남녀 소설가 2명이 같은 결말의 서사를 남자와 여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냉정과 열정 사이>는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에 이르는 과정을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추억하며 각자가 지닌 사랑의 정도를 저울질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꽤나 기발한 발상이자 흥미로운 기획인 듯 보인다. 하기에 일본의 여성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와 일본의 남성 소설가 츠지 히토나리에 의해 쓰인 두 권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 Blu>는 두 사람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 소설이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ROSSO든 Blu든 하나를 먼저 읽고 나중에 읽는 소설은 어쩔 수 없이 가독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각의 소설가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는 점도 무시할 수가 없다.


"후회 없는 인생이 있을까. 후회만 계속해왔다. 평생, 후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갑자기 다리가 무거워진다. 느슨하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올려다보았다. 굽어지는 길 중간쯤에 메미가 사는 아파트 불빛이 보였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어떡할까, 하고 망설였다."  (p.60)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가 쓴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를 먼저 읽었던 나는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Blu>를 읽는 데 꽤나 긴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츠지 히토나리의 문체나 서술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두 소설의 내용이 많은 부분 중첩되거나 예상 가능한 부분이 많아서 좀처럼 독서에 속도를 높일 수 없었던 때문도 아니다. 제목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달리 썼다면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었을 테지만 단지 주인공의 이름이 같고, 결말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독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나의 독서 이력에 있어서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그래서, 그날이 그리워,라는 애절한 멜로디의 일본 팝송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이다."  (p.194~p.195)


교포 출신의 아오이와 쥰세이는 도쿄의 대학에서 만나 연인이 되고, 사랑하던  두 사람은 아오이의 임신을 계기로 심하게 다툰 후 헤어진다. 그 후 쥰세이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술품 복원사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미술품 복원 일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쥰세이는 공방에서 함께 일을 배우는 다른 수련생의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게다가 조반나 선생님은 짬이 날 때마다 쥰세이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린다. 어린 시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쥰세이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뉴욕에 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표출된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쥰세이는 조반나 선생님에 대한 특별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한편 그의 곁에는 일본인 유학생 메미가 있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일본인 엄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메미는 두 사람의 이혼 후 줄곧 엄마와 함께 일본에서 생활한 터라 이탈리아어는 몹시 서툴렀다. 어학당에 다니며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메미의 유일한 조력자는 언어가 통하는 쥰세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헤어진 연인 아오이를 잊지 못하는 쥰세이는 연인인 메미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겉돌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쥰세이가 복원을 맡았던 명화가 심각하게 훼손된 채 발견되고, 그 일에 책임을 느낀 조반나 선생님은 공방을 폐쇄하기에 이르고,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수련생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책임을 느낀 쥰세이도 결국 일본에 사는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가 무기력한 생활로 일관한다. 어느 날 이탈리아에 있던 메미가 연락도 없이 쥰세이를 찾아오고...


"나의 광장. 예전에 그렇게 부르며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다.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떠돌며 살아가던 내게 있어 그녀는, 막다른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도시의 광장처럼 시원스러운 존재였다. 별다른 용건도 없이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노인처럼 매일 그곳을 찾아갔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나는 자신이 고독하지 않고, 행복한 존재라 생각할 수 있었다."  (p.168)


누구보다도 쥰세이를 아끼고 사랑했던 할아버지 곁에서 시간을 보내던 쥰세이는 조반나 선생님의 자살 소식을 듣고 다시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리고 헤어진 연인 아오이와 했던 오래전 약속을 떠올리는데...


남녀간의 사랑이나 결별은 한쪽편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결론짓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많은 변수를 일일이 확인하고 점검하여 최종적으로 누구의 잘못임을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언제나 사랑 앞에서 무모한 듯 보이고, 맹목적일 수 있다. 비록 그 결과가 참혹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사랑에 대한 용기는 그 무모함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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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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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심하는 이는 원래부터 다정한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다. 우리가 지난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 결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신년계획을 세우는 일도, 다이어트나 운동 등 새해 결심을 하는 일도 모두 그만두었다. 지키지도 않을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만 낭비하고 의지박약의 나 자신만 탓하는 일도 유행 지난 신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금 더 상냥한 사람,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시간마다 기도와 더불어 다짐하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다정한 품성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나는 제법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만회해 보자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런 거창한(?) 프로젝트를 실천하기 위한 첫 단계로 나는 시를 외우거나 읽기, 시인의 산문집이나 대담집 읽기로 계획을 잡았다. 말하자면 나는 '시인처럼 생각하기'를 실천해 볼 요량인데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어서, 시시때때로 이해득실을 따져 좋고 나쁨을 가리는 까칠하고 몸에 밴 자본주의 성정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나 자신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한평생 길들여진 자본주의 품성이 터줏대감처럼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까닭에 굴러온 돌인 시인의 품성은 매번 겉돌기만 할 뿐 진득하니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그렇게 쌓아가야 한다는 것은 허수경 시인으로부터 배운다.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독일어를 배운 지 1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독일어로 쓰인 시들을 읽을 수 있었다. 시들을 읽을 수 있으면서부터 배낭에 시집을 넣고 수천 번도 더 걸었던 도시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를 읽으며 걸었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는데 시 중독자이자 시인인 나는 시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를 통하지 않고는 사람의 속내나 거리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시는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미디엄이었다. 내 영혼의 속살은 그 매개로만 표현되었다. 이방의 시인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도시를 드문드문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p.24)


시인 허수경이 독일로 이주하여 터를 잡고 살았던 도시 뮌스터.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이야기인 <너 없이 걸었다>는 시인 자신이 살고 있는 뮌스터의 사람들과 풍경을 독일 시인들의 시와 엮어 그곳에 살고는 있지만 원주민의 시각이 아닌, 그렇다고 완전한 이방인의 시각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경계인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독일 문화의 깊은 숨결을 호흡하고 있다.


"외국어를 쓰고 사는 동안 나는 우리말로 대화할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컷 우리말로 수다를 해보았으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에게 절실한 건 우리말로 대화를 나눌 어떤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특정한 사람들이었다. 그 특정한 사람들이 들어 있는 기억의 서랍은 하도 자주 열어보아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다. 이 거리에서 내가 그렇게 자주 오라고 불러대던 사람들은 아마 다른 거리에서 나를 오라고, 그렇게 자주 불러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p.114)


허수경 시인이 우리에게 소개하는 독일 시인은 하이네, 트라클, 벤, 작스, 괴테, 릴케 등 어디선가 한두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유명 시인들과 그베르다, 아이징어, 호프만슈탈, 드로스테휠스호프 등 낯선 시인들의 이름이 섞여 있다. 진주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난 한 시인이 시가 아닌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뮌스터라는 독일의 소도시로 떠났을 때, 시인을 아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머잖아 돌아올 거라고 아주 쉽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을 깨고 시인은 독일에 눌러앉았고, 익숙했던 공간을 떠난 한 인간의 삶과 고독이 문틀에 새긴 아이의 키 눈금처럼 시와 글로 표출되고 있다. 독일이라는 먼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시인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사유를 버무린 이 책은 한 권의 문화백과사전인 셈이다.


"나이가 든다고 유혹이라는 치명적인 달콤함을 버릴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뭔가, 혹은 누군가에게 끌렸던 그 설렘만큼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 죽음의 기미를 알아채면서도 유혹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이들은 일종의 삶 중독자이다.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매일밤 도박장을 찾는 이 어쩔 수 없음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 그리고 우리들 모두에게는 유혹이 인생을 동반한다."  (P.187)


터무니없는 겨울 햇살이 비듬처럼 쏟아지는 오후. 나는 베란다 유리문을 통해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느린 발걸음을 시선으로만 좇고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소리가 차단된 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은 평화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러나 선량한 그들도 살다 보면 때론 본의 아니게 악다구니를 쓰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도 있을 터, 나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했던 오래전 약속을 부서지는 햇살 속에서 조심조심 꺼내 본다. 끈적하게 눌어붙은 주머니 속 사탕껍질을 벗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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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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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의 고민 중 하나는 오늘 점심에는 뭘 먹을까? 하는 문제이다. 남들이 생각할 때 그게 뭔 고민이 될까? 생각하겠지만 그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얘기다. 사무실 근방의 음식점이야 손으로 꼽을 정도로 빤하고 각각의 음식점에 대한 맛의 평가도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여러 번 들어 달리 변할 것도 없지만 그 많지 않은 선택지 중에서 오늘의 메뉴를 고르는 일은 매번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이 되기 전부터 나 대신 그 어려운 문제를 떠안을 다른 누군가를 물색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곤 한다. "김 대리, 오늘 뭐 먹을까?"


오늘은 사무실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으로 차를 몰고 나가 토종닭을 먹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을씨년스럽게 내리던 오전과는 다르게 비는 이제 진눈깨비로 변해 있었다. 급변하는 날씨에 오싹한 한기가 스며들었다. 요 며칠 기형적으로 따뜻했던 날씨 탓에 옷을 얇게 입고 나왔던 게 화근이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주문 요청이 들어왔다.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공깃밥에 닭볶음탕을 볼따구니가 미어져라 욱여넣었다.


"내가 감자탕을 처음 먹은 때가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감자탕 맛에 제대로 꽂히게 된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한다. 제법 추운 날이었다. 남자친구가 감자탕을 잘하는 집이 있는데 먹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귄 지 얼마 안 되어 매우 설레던 때라 "난 감자탕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쩌고 해서 남자친구의 제안에 초를 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제법 규모가 크지만 허름하기 짝이 없는 식당에 앉아 한참을 펄펄 끓인 감자탕의 첫 국물을 떠먹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감자탕 국물이 원래 이렇게 시원하고 맛있었던가? 믿을 수 없었다."  (p.181)


권여선 작가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를 다 읽고도 리뷰를 쓸까 말까 며칠을 고민했다. TV나 인터넷 방송의 먹방과 ‘쿡방’이 넘쳐나는 시대에 책이라는 낡은 매체가 이들과 경쟁하는 것도 우습고,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그리 크지 않은 나로서는 작가가 밝힌 음식과 그에 얽힌 여러 뒷얘기에 덧붙일 말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블로그 활동을 하는 여러 블로거 중 다수가 자신이 방문했던 여러 음식점의 사진과 메뉴 등을 경쟁하듯 올리고 있는 게 현실 아니던가. 현실이 그와 같은데 나 역시 남들이 읽지도 않을 글을 올리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는 게 그닥 내키지 않았다.


"술꾼은 모든 음식을 안주로 일체화시킨다. 그래서 말인데 옛날 허름한 술집 문이나 벽에 붙어 있던 '안주 일체'라는 손글씨는 이 땅의 주정뱅이들에게 그 얼마나 간결한 진리의 메뉴였던가. 내게도 모든 음식은 안주이니, 그 무의식은 심지어 책 제목에도 반영되어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줄이면 '안주'가 되는 수준이다. 이 책 제목인 «오늘 뭐 먹지?»에도 당연히 안주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  (p.10 '들어가는 말' 중에서)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부 '봄.청춘의 맛', 2부 '여름.이열치열의 맛', 3부 '가을.다디단 맛', 4부 '겨울.처음의 맛'의 사계절과 5부 '환절기'가 더해지고 있다. 음식은 대개 추억과 함께 기억된다. 그러므로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 얽힌 말하는 이의 추억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을 쓰는 이의 성정과 글솜씨에 의해 독자의 감흥이 달라질 뿐이다. 그런 까닭에 이 시대의 이야기꾼인 권여선 작가의 음식 이야기는 책을 잡은 어떤 이에게도 매혹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고, 작가가 떠올린 어떤 추억은 마치 내 일인 양 울고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이십 대 후반 무렵 겨울에 비록 반지하방이긴 해도 처음 독립해 자취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내 부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방에서의 첫 식사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사를 마치고 피곤한 와중에도 나는 기운을 북돋워 시장에 나가 소고기와 콩나물, 꼬막과 양념거리를 사 왔다. 소고기에 콩나물과 대파를 넣어 고깃국을 끓이고 꼬막을 삶아 양념장을 듬뿍 넣어 조린다. 내 조그만 자취방은 금세 맛난 고기와 조개, 양념 냄새로 가득했다. 훌륭한 만찬에 소주까지 곁들이니 부러울 게 없었다."  (p.210)


낮에 먹었던 닭볶음탕이 생각난다. 창밖으론 진눈깨비가 내리고 식당의 좁은 문으로 드나들던 많은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 느긋하게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했던 그 한 끼의 식사가 날씨처럼 스산했던 오늘 오후를 지탱하는 든든한 힘이 되었기를... 그리고 언젠가 오늘보다 느긋한 하루가 주어진다면 오늘의 식사를 함께 했던 식탁 위의 얼굴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하기를... 그렇게 맛있게 늙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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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리커버)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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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톨스토이의 명대사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의 의미에 대하여 이따금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일을 하다가도 불현듯 습관처럼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기도 한 이 대목은 소설을 읽은 사람이건 읽지 않은 사람이건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며 제법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톨스토이 자신이 어떤 의미에서 이 문장을 꺼내 들었을까 하는 작가의 의도 또는 작가의 철학적 기반에 대해서는 이것이다 하고 답을 내기 어려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수많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작가가 생각했던 그 말의 진의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를 읽으면서도 나는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그 문장을 떠올렸다. 바삭바삭 부서질 것처럼 건조하고 짧은 호흡의 문체에 소설 속 주인공 아오이의 행복한 일상이 얹히는 것은 꽤나 이질적인 조합으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일본 교포 출신의 주인공이 이탈리아라는 특별한 공간에 거주하는 것도, 그곳에서 포도주 수입상을 하는 미국인 남자친구 마빈을 만나 동거를 시작하는 것도, 자신에게 거의 모든 것을 허락하고 헌신적으로 대하는 남자친구 덕분에 행복한 일상을 이어가는 것도 행복의 무작위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사례쯤으로 여겨졌다. 사실 현실에서의 행복은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무작위로 받게 되는 하나의 작은 선물과 같은 것이며 우리가 의도한다고 해서 작위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현실에서의 불행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모두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물임을 알게 된다. 비록 우리는 자신의 불행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하곤 하지만 말이다. 톨스토이는 어쩌면 행복의 이러한 무작위성과 불행의 개별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는 비가 잎을 흔들고, 공기를 흔들고, 7월의 거리를 적시고 있다. 사륵사륵 희미한 빗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시간도, 장소도, 모든 것이 형태를 빼앗기고 만다. "따분하지 않아?" 태산목을 지나, 오른쪽 정원을 따라 이어지는 검정색 철책을 손가락으로 만지면서 걷고 있던 안젤라가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p.65)


교포 출신의 아오이는 일본에서 밀라노로 다시 돌아온 지 삼 년째이다. 주택가의 작은 보석 가게에서 일주일에 사흘만 일하면서 한가하고 조용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밀라노에서 사업을 하는 마빈은 보석 가게의 손님으로 왔다가 아오이와 사랑에 빠져 동거를 하게 된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마빈이지만 아오이의 가슴 한켠에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것이 자리하고 있다. 도쿄의 대학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던 쥰세이에 대한 그리움이 그것이다. 마빈과의 행복하고 조용한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마빈의 누나인 안젤라가 찾아오고 아오이의 삶에 균형을 깨는 묘한 긴장감을 던진다.


"마빈에게 등을 보인 채, 콸콸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뜨거운 물에 손을 대고 말했다. "나에게는 나의 생활이 있어요." 물소리, 물 냄새. "그거야 알지(I know.)." 소름이 끼칠 정도로 쓸쓸한 목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마빈." "알고 있었어. 아오이에게는 아오이의 인생이 있고, 나는 근접할 수조차 없다는 것을." 상처 입은 목소리였다. 마빈은 절망적으로 피식 웃으며 "I know"를 반복한다. 나는 후회했다."  (p.160)


마빈과의 사랑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던 어느 날 쥰세이가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완전히 털어냈다고 생각했던 쥰세이에 대한 기억은 그날 이후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리고 마빈과 함께 시작했던 새로운 생활 속으로 되돌리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게 허사였다. 결국 아오이는 자신의 짐을 싸서 나와 방을 따로 얻고 보석 가게에서도 풀타임 아르바이트로 전환했다. 그럼에도 마빈은 아오이를 포기하지 않았고...


"엄마와 달리, 나는 이 도시의 인간이다. 국적이야 어떻든 간에.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소리도 없이. 그러면서도 전혀 그칠 기미가 없다. "아오이." 페데리카의 방은 기묘하다. 방 전체가 페데리카 같다. "네?" 담배를 낀 손가락에, 오늘도 남편에게 선물 받은 묘안석 반지를 끼고 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페데리카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거의 혼자 중얼거리듯."  (p.196~p.197)


우리의 사랑이 엇갈리는 것도, 간절히 원하던 어떤 것도 결국에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까닭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행복이 랜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형태는 서로 비슷하다. 비슷할 수밖에 없다. 우리들 각자가 만들어낸 개별적인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불행은 각각의 선택이 도출한 개별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노라고 자신이 믿는 신 앞에서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거짓을 고백하곤 하겠지만 말이다. 십 년 후 5월 25일 피렌체의 두오모를 함께 오르자고 했던 쥰세이와의 약속을 아오이가 기억하고 로마행 열차를 타야 했던 것처럼.


명절 연휴의 피로가 대기중에 떠도는 미세먼지처럼 탁하기만 하다. 며칠 지나면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비슷한 날들이 예전처럼 이어지겠지만 지금 당장의 피로를 떨쳐낼 수만 있다면 악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을 듯하다. 우리의 불행은 언제나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달콤한 목소리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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