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나를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예상도 못한, 내가 뭐라 대답할 수도 없는 곤혹스러운 내용이었다.
"저...00이 엄만데요. 지금 전화 받기 괜찮으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말씀 하세요."
"우리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그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선생님 바쁘실텐데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전화드렸어요."
"네? 아니, 왜요?"
나는 책상의 전화벨이 울리는 것도 듣지 못할 정도로 놀랐다.
업무 시간에는 가급적 업무 외적인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의 결벽증에 가까운 성향도 그때는 작동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직원이 내 전화를 대신 받았고, 지금은 통화중이니 메모를 남겨달라며 전화를 끊을 때까지 넋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00이랑은 대화를 해보셨나요?"
"몇 개월 전부터 자퇴할 생각으로 여러 정보를 알아봤었나 봐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에서 꺼낸 말이라 말리지도 못하겠더라구요."
내가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그 학생은 유독 눈에 띄었다.
많지 않은 고등학생 중에 체구는 작지만 다부져 보였고, 유난히 말수가 적은 반면 한번 말을 꺼내면 딱 부러지게 끝을 맺는 학생이었다.
가끔, 내가 낮에 회사일로 지쳐있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피곤해 보인다며 자신들 때문에 고생시켜 드려 죄송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에 의하면 성적도 반에서 1,2등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이렇게 정을 나눌 수 있는 학생들이 있어, 그리고 가르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학생이 있어 행복했는데...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평소와 다름없이 내 숙소를 찾아온 그 학생에게 자퇴에 관한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혼자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짠했다.
학생의 어머니 말씀으로는 내년 4월에 검정고시를 치르고 자신이 목표하는 대학에 반드시 입학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했었단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그 학생의 고단한 삶이 직장일에 지친 내 어깨에 켜켜이 내려 앉는 밤이다.
어느날이던가 학교의 분위기도 산만하고, 상위권 대학의 합격율도 그리 높지 않아 검정고시를 볼까 하는데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며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을 때 나는 왜 학생의 고민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학교를 그만두어도 여전히 내게 도움을 요청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껏 모교 프리미엄을 누리고 살았던 내가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으며, 검정고시라는 외롭고 힘든 길을 선택하려는 그 학생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으랴.
친구들과 함께 이 늦은 밤까지 묵묵히 책장을 넘기고 있는 학생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외로워 보인다. 내게 모교는 어떤 의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