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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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보라는 무척이나 학구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그를 직접적으로 대면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쓴 소설의 일부 장면에서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전문적인 지식과 생경한 단어들의 조합이 맥락도 없이 길게 이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오히려 아주 쉬운 단어를 동원하여 가장 쉬운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소설가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적 욕구가 왕성한 정보라 작가는 칭찬을 받으면 받았어야지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를 사랑하는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소설의 흥미를 끊는 전문적인 서술 부분은 못내 아쉬운, 말하자면 정보라 소설의 '옥에 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생경한 단어를 통해 작가의 높은 학구열은 십분 파악할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소설의 시작은 상당히 도발적이다. 테러 사건의 범인 '태'와 유명 제약회사 사장의 딸인 '경'이 관계를 하는 장면이다.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고통의 경험'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제약회사 사장의 딸로 태어난 '경'과 달리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는 '태'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형과 함께 사이비 종교 교단에서 성장했다. '태'가 속한 교단에서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고, '태'는 특별한 부작용 없이 강력한 진통 효과를 보이는 'NSTRA-14'를 개발하는 제약사에 폭탄을 던져 사상자를 발생시킨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교단은 연이어 벌어진 살인 사건에 엮이고, 수사팀은 교단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태'를 동행한다. 그렇게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태'의 형 '한'을 만난다. 폭력을 동원하여 일부러 통증을 유발하고,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게 일종의 수련 과정이며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 '한'은 수사가 진행될수록 살인범으로 의심받는다.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여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p.284~p.285)


제약회사 대표의 딸로 태어나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경'은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생체실험의 도구로 쓰였으며, 친족 성폭력을 경험하였고, '태'의 폭탄테러로 부모님을 잃고 토네이도에 의해 어린 오빠마저 잃었다. '경에게는 이렇다 할 삶의  목적이란 게 없었다.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건 동성 배우자인 '현'의 존재였다.


"죽고 싶었는데, 죽고 싶은데도 죽을 수 없었는데, 그래서 살아남았는데, 죽지 않고 살아서 앞으로 찾아올 고통을 또 견뎌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주했는데, 존재를 태워버릴 듯한 공포와 분노와 절망 또한 몸 안의 고통과 마찬가지로 흔적도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경은 칼날로 살을 가르고 불로 몸을 태웠으나 그 역시 새로운 절망과 분노만을 남길 뿐 그 순간이 지나면 고통은 사라졌다. 흉터는 고통의 기억을 되살리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시간과 함께 바래고 쪼그라드는, 오래된 절망의 초라한 흔적일 뿐이었다. 자신의 몸 전체가 - 존재 전체가 아마 그러할 것이라고 경은 흉터를 보며 가끔 생각했다."  (p.44~p.45)


작가는 '고통'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여러 부조리를 파헤치려 한다.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성폭력 등 우리 사회에서 근절되지 않는 폭력과 고통의 악순환은 어쩌면 그 밑바닥에 고통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자 하는 악의 무리가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고통을 견디는 게 구원의 길임을 설파하는 종교 집단은 우리 삶에서 상존하는 고통을 통해 그들의 권위와 부를 축적하는가 하면 제약회사는 고통을 완화하고 조절하는 약을 판매함으로써 부를 취한다. 인간에게 고통이 없었더라면 그들에게 축재의 수단은 사라지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없던 고통도 만들어 냄으로써 고통이 만연한 사회, 고통에 중독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 시장 경제를 추종하는 한국 사회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무한 경쟁의 출혈은 전 생애 동안 계속된다.


"탐색은 실패했다. 이제 경은 그 사실을 이해했다.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고 고통의 경험도, 고통에 대한 대응도 각각 달랐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만의 것이었다."  (p.301)


로고테라피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정보라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서 '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와 같은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고 있다. 혹자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냥 즐길 수만도 없는 게 인생 아닌가. 고통을 수용하는 방식 또한 획일적으로 교육되고 그 결과를 요구한다면 그 또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종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네 삶에서 고통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신약을 발명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고통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일종의 세뇌가 아닐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깨달음의 과정 역시 다양하다는 것을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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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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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면 인생은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더 짧은 듯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수없이 많은 인생을 기록하고, 또다시 읽고, 기억하려 애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읽었던 한 사람의 인생만큼 나의 인생이 조금 더 길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를 독서의 세계로 안내하는 게 아닐까, 혹은 수없이 많은 영화의 세계로 이끄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남긴 삶의 기록들을 읽어가다 보면 나의 인생도 무한대로 늘어나지나 않을까 한껏 기대를 품게 됩니다. 철없이 말입니다.


이희영 작가의 소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역시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한 사람의 흔적을 좇는 이야기인 동시에 형이 살았던 가상의 세계에서 형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가는 주인공 선우혁의 이야기를 다룬, 말하자면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나는 여름이 뒤돌아 앉은 가을 들녘을 바라보며, 어쩌면 주인공 선우혁이 맛보았을 새콤달콤한 추억의 장면 장면들을 상상하느라 단풍이 드는 소리도 미처 듣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자연도 한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초록으로 뒤덮여도 은행나무요, 꽃이 져도 벚나무니까. 그런데 은행나무는 가을의 상징이고 벚꽃은 봄의 표상이다. 바라보는 인간들이 그냥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한 사람에게 서로 다른 추억과 이미지가 덧씌워지듯이."  (p.243)


주인공인 선우혁에게는 터울이 많이 지는 형이 한 명 있습니다. 아니 있었다고 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그러나 십이 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형 선우진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의 형에 비해 주인공 선우혁의 나이는 고작 다섯 살의 꼬마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형과 꼭 닮은 모습으로 성장한 선우혁은 이제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입학한 새내기 고등학생입니다. 형이 다니던 학교에서, 같은 나이가 된 주인공은 그 당시의 형은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유행했다는 메타버스 게임 '가우디'를 알게 되고, 형의 계정으로 접속을 시도합니다. 형의 아바타 JIN으로 말입니다.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 형은 넓은 정원이 있는 2층짜리 하얀 벽돌집을 지었고, 형이 없는 동안 그곳을 지켰던 형의 공유 친구 '곰솔'과 조우하게 됩니다.


"엄마 아빠는 알고 있었을까? 형이 가우디에 이런 세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마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난달에서 격투기 게임을 관람하고 댄스 크루를 응원하며, 낚시하는 친구를 따라 몇 시간이고 호숫가에 앉아 있는 나를 모르는 것처럼. 어쩌면 인간의 진짜 세상은, 핸드폰과 노트북 그리고 XR 헤드셋 너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밀번호로 봉인된 곳. 그런 의미라면 이 정원은 형의 진짜 세계다."  (p.64)


가상세계 속 형의 정원을 둘러본 후 주인공은 형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갑니다. 그러나 형을 기억하는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에 따라 '애교 많은 수다쟁이 아들', '조용하고 책임감 강한 학생', '무던한 성격' 등 제각각입니다. 소설은 형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선우혁이 발견한 형 선우진의 짧았던 삶의 조각들과 어쩌면 가상세계 속 '곰솔'이 선우진에게 보냈을 것으로 추측되는 '너'를 향한 편지가 교차되면서 전개되는 까닭에 애틋함이 더해집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너는 받지 않았어. 학교에서도 너를 볼 수 없었지. 네가 아무도 몰래 우리 집 문 앞에 두고 간 그 귤은, 얼마 못 가 파랗게 곰팡이가 피더라. 그리고 완전히 썩어 버렸어. 하지만 버리지 못했어. 정말 그럴 수 없었거든."  (p.195)


소설 속 편지는 학교에서 처음 마주했던 날부터 함께 했던 조별 활동, 둘만의 가상공간을 만들기까지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을 시간들이 길게 이어집니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이 살았던 현실의 삶과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재구성되는 또 다른 삶을 통해 두 번의 인생을 살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둘 중 진정한 삶은 이것이다, 그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죽고 난 뒤에 재구성되는 나의 삶에 나는 더 이상 개입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삶이 소중한 것도 그런 이유일 테지요.


소설을 읽는 요 며칠, 나도 미처 모르는 새 나뭇잎의 물기가 점점 옅어지고, 하늘은 두어 뼘쯤 높아진 듯합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어떤 일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아주 미미한 성과로 귀결되었을 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까닭은 누군가의 인생을 통해 나의 인생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듯한 착각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계절을 잊은 채 책을 읽는 까닭도, 황금 같은 주말 오후를 영화를 보며 소일하는 까닭도 그런 이유가 마음 저변에 넌즈시 깔려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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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시간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오픈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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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어둡다. 어두운 하늘을 향해 을씨년스럽게 솟은 아파트의 흰색 외벽이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외고집을 대변하는 듯하다. 자연에 저항하는 게 삶이라면 죽음은 그 반대일 것이라는 손쉬운 가정이 주말 오후의 하늘에 화두처럼 매달린다. 매번 반복하는 상실과 그리움의 일기 면면에 나는 '실수'라고 불리는 어떤 사건들을 간식 메뉴처럼 기록한다. 나에게 활력을 주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건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흘러가는 틀에 박힌 일상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실수'의 기록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성당의 잡무를 담당하는 사무장님과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입맛이 없었던 나는 여러 가지 채소에 양념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빈 공깃밥에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는 된장찌개백반을 시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두어 젓가락 깨작거리다 반나마 남기겠거니 생각했는데 담백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없던 입맛을 살아나게 했던 것이다.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고 성당에 다시 들러 후식 삼아 믹스 커피까지 한 잔 하고서야 헤어졌다. 집으로 향하던 길, 차 안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앞차의 주변을 맴도는 노란 나비 한 마리를 보았다. 신비스러운 풍경이었다.


리 차일드의 소설 <61시간>을 마저 읽었다. 잭 리처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은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61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퇴역 군인으로 딱히 할 일도 없이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주인공 잭 리처는 교회의 단체관광객이 탄 버스에 몸을 싣는다. 승객 대부분이 노인이었던 그 버스는 사우스다코타의 볼턴 인근에서 사고로 발이 묶인다. 리처와 승객들은 경찰의 도움으로 마을에 묵게 되지만 마약 밀매업자들이 날뛰는 마을에는 오래전에 폐기된 석조 건물을 둘러싸고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게다가 마약 거래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재닛 숄터 여사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노부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잭 리처는 그 지역의 경찰들과 함께 사건에 휘말린다.


“난 댁이 왜 우리 집에 와 있는지 알아요. 왜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는지도 알고. 교도소에서 사이렌이 울릴 경우에 날 보호해주려는 거겠지요. 그래서 이 집 구조를 알아두려는 거고요. 난 그런 리처 씨에게 감사해하고 있답니다. 비록 그쪽의 심리적 강박증 때문에 충분할 정도로 오래 머무르진 않을 것 같지만 말이에요. 재판은 한 달 후에나 열린답니다.”  (p.186~p.187)


마약 거래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인인 재닛 숄터 여사를 보호하는 한편 잭 리처는 마을 인근에 있는 공군 폐기 건물의 용도와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자신이 근무했던 헌병대 수사팀으로부터 군 기록물을 검토하여 알려줄 것을 부탁하는 한편 폭주족들이 점거하고 있는 석조 건물을 위험을 무릅쓴 채 단신으로 탐사를 감행하기도 한다. 석조 건물의 지하에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쓰고 남은 항공유와 참전 병사들에게 제공했던 다량의 마약 그리고 약간의 보석류가 보관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비밀을 알게 된 마약 밀매업자 플라토는 마약을 자신의 수중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데...


“네브래스카 주, 12킬로미터 상공. 플라토의 세 번째 줄 뒤 좌석 4A에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전화기 한 대가 단단한 허벅지 근육에 조용하면서도 격렬하게 요동쳤다. 여섯 명의 ‘일회용’ 멕시코인 가운데 다섯 번째 사내가 전화기를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그는 옆자리 4B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여섯 번째 사나이는 오늘 다섯 번째 사나이와 같은 트럭에 동행했었다. 두 남자는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지는 않았다.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긴장해 있었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단 한마디였다. 해치워.”  (p.465)


어제부터 흐렸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다. 푸른 하늘에 대비되는 하얀 아파트 외벽은 인간 의지의 표상인 양 높고 굳건해 보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라고 말했던 재닛 숄터. ‘중요한 건 어떻게 가느냐지요.’라고 응수했던 잭 리처.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에너지 삼아 한평생을 살고, 그 에너지가 소진될 때 비로소 자신도 역시 자연의 일부였음을 깨닫게 된다. 리 차일드의 소설 <61시간>의 결말은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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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읽고 쓰고 배우는 법
고미숙 지음 / 작은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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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 작가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 생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서 글을 잘 쓴다는 의미는 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뜻이다. 물론 고미숙 작가 역시 강연과 글쓰기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전업 작가인지라 아마추어 작가의 글쓰기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많은 전업 작가 중에서 고미숙 작가의 글이 단연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글에 열광하고, 나 역시 이따금 생각날 적마다 책을 꺼내 읽는 까닭은 그녀의 생각이 깊고 바르며,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글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프로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십수 년째 블로그를 유지하면서 글쓰기와 낙서를 끄적이고 있는 나로서도 고미숙 작가의 그와 같은 능력이 어찌나 부럽고 시샘이 나던지 때로는 그녀의 글에 탄성을 내뱉곤 한다.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대부분의 아마추어 작가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시작한 글도 나중에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볼라치면 자신의 처음 생각과는 백팔십 도 달라진 결과물에 본인도 깜짝 놀라곤 했던 수많은 경험들.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글로 풀어쓸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갖는 게 아니구나, 하고 내뱉었던 좌절의 언어들.


“책을 읽는다는 건 내용과 서사, 정보와 교훈을 얻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진짜 핵심은 책의 '리듬과 강밀도'를 체득하는 일이다. 스마트폰이 퍼뜨리는 '빠름의 교리'를 거스를 수 있는, 청춘의 열정에 긴 호흡을 불어넣을 수 있는 대안으로 장편고전을 읽는 것만 한 게 없다! 아, 한 가지 더. 『임꺽정』에도 '판소리계 소설'에 못지않게 도처에서 질펀한 입말들과 가슴 뛰는 에로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 '진맛'을 누릴 수 있다면, 스마트폰의 현란한 스펙터클 같은 건 좀 시시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p.52)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작가는 이 책에서 사계절의 분류에 따라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각각의 계절에 걸맞은 고전을 선정하여 자신의 생각과 함께 고전에 있는 자연의 이치를 설파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계절의 변화 역시 순환과 반복의 과정임을 고전을 통해 배워보자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고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지식인으로 출발했지만, 고전평론가가 된 이래 고전을 읽고 쓰는 것이 삶의 근간이자 현장이 되었다. 그것은 고전 안에 담긴 시공의 리듬을 익히고 터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알게 되었다. 일 년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면 하루도 봄여름가을겨울이고, 마침내 인생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실을. 때에 맞게, 때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전의 지혜라는 것을. 고전과 인생, 그리고 사계의 삼중주!”  (p.19)


서문에 이어 책의 본문에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임꺽정>, <걸리버 여행기>, <장자>,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구운몽>,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동의보감> 등 동서양의 고전이 고르게 등장한다. 그리고 5장에서 작가는 읽고 쓰는 것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피력한다. 고전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한다. 작가가 불러온 책의 제목만 보아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책들이다. 그러나 그중 몇 권이나 읽어보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일 듯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벽초 홍명희가 쓴 10권짜리 <임꺽정>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대학생이었던 당시에 피곤함도 잊은 채 밤을 새워 읽었던 <임꺽정>은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고, 한자가 아닌 순수 우리말로 이렇게 장대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홍명희라는 작가에 대한 깊은 경의였다. 그리고 역사는 우리의 피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현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인가, 오히려 집필기간 동안 더 건강해진다. 불필요한 일은 가능한 한 생략하고 먹고 자는 일에 충실하게 된다.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일도 가급적이면 피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소통도 훨씬 매끄럽게 된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 평소에 감정을 참 과잉으로 쓰면서 사는구나, 감정에 휩쓸리는 건 결국 시간과 정력이 남아돌아갈 때 하는 헛짓이로구나 하는, 글쓰기가 요가나 명상, 기도 못지않은 수행이 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p.209)


고미숙 작가는 여전히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글을 읽고, 열광하며, 감탄한다. 작가의 웅숭깊은 생각이 고스란히 글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숨은 의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과 글이 일치한다는 것은 자연을 닮아간다는 뜻이다.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에 표리여일(表裏如一)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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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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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할 실체'는 우리의 인식 저변에 당위와 의무를 제공한다. 그러한 당위와 의무는 사실 시간의 연속성상에서 익숙함과 무관심을 낳기도 하고, 본능에 가까운 인간의 호기심으로부터 한 발 멀어지도록 우리를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한 번뿐인 이 삶에서 더 많은 도전과 경험을 통해 더욱더 많은 깨달음을 얻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떠한 변화와 흔들림에도 현혹되지 않는 간헐적인 충만함으로 채워가는 것이리라.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물리학자들이 설명했듯이 시간은 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임을 기억하자. 우리의 삶은 하나의 선 위에 찍힌 점이 아니다. 이 선은 전례가 없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의 일시적 탐욕에 의해 전달되고 있다. 우리는 선 위의 점이 아니라, 원의 중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p.109)


우리나라의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 평소에 자주 못 보던 가족들을 만나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지만 명절은 오히려 그들과의 단절을 확인하는 씁쓸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이라는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누군가의 산적한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저간의 사정을 들려주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까닭에 우리들 각자는 듣는 이도 없는 각자의 지난 일들을 허공에 쏟아내고는 서둘러 돌아서는 게 명절의 또 다른 풍경이리라.


"역사에 대한 어떤 감각, 과거와 미래를 잇는 그 감각은 완전히 말살되었거나 있더라도 주변화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종의 역사적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프랑스어에는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S.D.F Sans Domicile Fixe('일정한 주거지가 없는'이라는 뜻--옮긴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 역사적 S.D.F가 될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압박 아래 살고 잇다. 죽은 자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받아들이는 인정된 의식이 이제 더 이상 없다. 매일매일의 삶은 있지만 그걸 둘러싸고 있는 건 공백이고, 그 공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는 오늘 홀로 있다. 그리고 그런 고독은 죽음을 벗 삼을 수도 있다."  (p.61)


미술비평가이자 소설가로서, 사진이론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사회비평가이자 인문학자로서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일상의 단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 줬던 존 버거. 만년에 이른 그가 11편의 짧고 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책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의 깊은 사색으로부터 하나하나의 문장에 이른 지난한 과정들을 되짚어보았다. 그러나 그가 기록한 모든 문장에는 내가 풀 수 없는 함의가 마치 암호처럼 감추어져 있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코드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의 삶이 이야기대로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 다른 이야기를 쓰게 될까. 내 생각엔 아니다. 하지만 당시 배 위에서 나는 이야기꾼으로서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다. 내가 정하는 대로 가는 거였다."  (p.50)

"우리를 둘러싼 원에는 석기시대 이후로 선조들이 우리들을 위해 남겨 둔 증언들이 있고, 꼭 우리를 향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 있다. 자연과 우주의 텍스트. 그 텍스트들이 대칭적인 것과 혼란스러운 것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가혹한 운명을 극복하는 기발한 방법들이 있음을, 욕망의 대상이 언제나 약속의 대상보다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p.110)


긴 연휴라지만 하루로 가늠할 수 있는 시간들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시간 개념이 없기 때문에 시간의 속도를 더 빠르게 인지한다는 건 하나의 모순이다. 어쩌다 보니 또 하루가 흘렀다. '매일매일의 삶은 있지만 그걸 둘러싸고 있는 건 공백이고, 그 공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는 오늘 홀로 있다.'는 존 버거의 말이 암호처럼 내 머릿속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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