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체제에서 '상생'이라는 말만큼 공허하고 헛된 구호도 다시 없을 듯합니다. 말하자면 겉만 번지르르할 뿐 실속이 없는 말이라는 뜻이지요. 자본주의는 애초에 개인의 욕심을 부추겨서 기술진보와 경제성장을 일구워왔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욕심은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성장동력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므로 '상생'이니 '이타주의'니 '헌신'과 같은 말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런 것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성자와 같은 인격체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장면일 뿐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자본주의 국가에 속한 종교단체는 온전할까요? 제 생각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종교단체의 지도자가 성인의 경지에 있는 완벽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말이죠.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표한 것도 비슷한 이유일 듯합니다. 누구보다도 욕심이 많은 그가 돈이 된다면 못할 일이 없었던 것이죠. 가뜩이나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된 그의 위치를 감안할 때 그런 일쯤이야 전혀 두려울 게 없었을 듯합니다. 처음부터 그는 인도주의니 윤리니 하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의 저항으로 인해 몇 백, 몇 천 명이 죽건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본심으로는 이번 기회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제거되었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르죠. 미국인들은 개인의 윤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반미치광이를 자국의 대통령으로 뽑은 셈입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 자리를 아들에게 세습한 명성교회만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전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니지요. 그것은 애초부터 종교단체가 아니었으니까 말입니다. 종교단체를 가장한 개인기업이라고 하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땅을 사서 축재를 하고 축적된 재산을 고스란히 상속하기 위한 재단을 만들고 하는 행위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행동인 셈이지요. 종교인이 아닌 개인에게서는 말이죠.

 

오늘은 문재인케어를 반대하는 의사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도심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거리로 불러냈던 동인은 무엇이겠습니까. 돈에 대한 욕심이지요. 비급여 축소는 그들에게 수입의 감소를 가져올 게 너무도 뻔한 사실이니까요. 세상에는 돈 때문에 미쳐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트럼프도, 명성교회도, 대한민국의 의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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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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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1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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