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직선으로 꺾이는 모퉁이에 등나무 정자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자귀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정자와 자귀나무의 조합이 어쩐지 낯설고 영 어색하게만 느껴지곤 한다. 정자 옆에 자귀나무를 심자고 했던 건 도대체 누구의 발상이었을까. 20년도 더 된 오래된 아파트인 이곳으로 내가 이사와 살게 된 건 기껏해야 5년 남짓이니 새내기와 다름없는 내가 그 이전 상황을 알 길은 없지만 그곳에 자귀나무가 심어진 전후 사정이 왠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파트가 처음 지어질 때 조경을 담당했던 업자의 손에 우연히 어린 자귀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던 것인지, 건설회사의 담당 소장이 유난히 자귀나무를 좋아하여 그곳에 자귀나무를 심도록 강권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사오기 몇 해 전에 아파트 관리소장의 직권으로 자귀나무가 심어진 것인지...

 

우리 사회에도 이처럼 영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색한 조합들이 수도 없이 많다. 언론인과 기업인, 검사와 기업인 등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두 그룹이 서로 반목하며 소 닭 보듯 데면데면 지내는 게 당연하다 싶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들은 상식을 깨고 오랜 세월 비교적 친밀하게 지내왔던 것인지 엊그제 언론에 보도된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내용을 보면 이게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 맞는지 의심부터 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아들의 입사 청탁을 부탁했던 CBS 전 간부, 삼성의 광고액을 늘려달라고 부탁했던 문화일보의 간부, 자신을 사외이사로 뽑아달라고 청탁했던 서울경제의 전 간부,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알려달라는 매일경제의 한 기자, 이건희 회장의 성매수 사건을 두둔하는 듯한 연합뉴스 관계자, 삼성에 근무하는 사위의 인도 파견을 요청하는 임채진 전 검찰총장 등 문자 메시지 내용과 문자를 보낸 주체자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장 사장과의 친밀함을 내보이는 한편 '사장님의 하해와 같은 배려와 은혜를 간절히 앙망하오며'와 같은 듣기에도 민망한 저자세의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다.

 

새로운 정부가 세워진 지 불과 3개월 남짓,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우리 사회 곳곳의 부적절한 관계를 정말 많이도 보아왔다. 이와 같은 일들이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들은 누구누구와 친하다는 게 마치 자신의 위세를 드러내는 한 사례인 듯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최고권력자인 대통령과 친밀했던 최순실과 알고 지낸다는 건 얼마나 큰 위세였겠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마치 권력과 위세의 상징인 양 치부되었던 구시대의 풍경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만 보아왔던 게 아닌지 나부터 반성해본다. 정자와 자귀나무처럼 부조화는 부조화로 바라보는 게 옳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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