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병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또 있을까 싶다. 사실 군복무를 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공관병이라는 직책은 생소하기만 할 텐데 말이다.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의 부인이 공관병에게 갑질을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실시간 검색어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보면 언론의 힘이 무섭구나, 싶다.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과거에는 공관병이나 당번병, 1호차 운전병 등을 주로 '따까리'라고 불렀다. 일종의 비서인 셈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병들은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머리도 기르고 사복을 입고 생활했으니까 말이다. 다른 것보다도 훈련이나 야간 보초를 서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부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격이랄까.

 

뉴스에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박 대장과 그의 부인이 했던 짓은 로마시대의 노예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게 어제 오늘의 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과거에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왜 이제서야 알려지게 된 것일까?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이전 보수당(새누리당이나 자유당 등) 정권 시절에는 만약 일개 사병이 이런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고 하더라도 장성이 처벌받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사병이 영창에 보내질 확률이 훨씬 높았으리라. 그런 위험성을 뻔히 알고 있는데 계란으로 바위를 치겠다고 만용을 부릴 사람은 없었을 줄로 안다.

 

뉴스 보도를 보면서 '아, 세상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둘 보도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은 숨죽이고 있다가 때가 되면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드는 게 기득권을 누려본 사람들의 행태이니까. 가장 무서운 적폐는 지금 알려진 현실이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른다. 정의를 세운다는 건 일회성의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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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긴하기 귀찮아 2017-08-0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정말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남자들이 어째서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제대하고 나면 그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걸까 하는 부분입니다. 자기 다음에 올 병사들을 위해서 또는 자신의 모욕감에 대한 보상이라도, 현역일때는 하지 못했던 어떤 사안들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민간에서는 별일 아닌것을 가지고도 보복을 하거나 사소한 일로도 찾아가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없지 않은데 너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제대후에라도 보복 차원의 어떤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다면 좀 조심하지않았을까요? 비단 노예병사의 문제만이 아니고요.

2017-08-02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꼼쥐 2017-08-03 18:46   좋아요 0 | URL
남자들은 대개 군에서 있엇던 일을 하루라도 빨리 잊고 싶은 게 공통심리인 것 같습니다. 멀쩡한 몸으로 제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생각하는 것이죠. 제대한 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유도 그게 세상에 알려지고 부대내에서의 불법행위가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 병사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군대는 사회와 철저히 격리되어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요. 군대의 비리를 알고 잇는 군인권센터조차도 증거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