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 번이 어렵지 어떤 일이든 한 번 물꼬를 트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한결 쉬워지나 봅니다. 그렇게도 오지 않던 비가 연일 오락가락 하니 말입니다. 가뭄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한 강수량인지라 사람들은 다들 '찔끔'이라는 말로 애타는 속내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비를 이렇게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비가 이토록 귀하신 몸이 되고 보니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강수량 수치를 다르게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예컨대 1mm라든가 10mm라는 수치는 그 위대함에 비해 우리가 체감하는 건 극히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강남구 지역에 한 시간 동안 20mm가 내렸다면 일반인이 그 양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남들이 하듯 그저 '찔끔'이라는 말로 가치절하 하기 쉽다는 것이지요. 그보다는 오히려 강남구 지역에 한 시간 동안 내린 비의 양은 2리터 페트병 50만 개 정도의 분량이었다고 발표한다면 비록 흡족한 강우량은 아닐지라도 '아, 이렇게나 많은 비가 내렸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겠지요. 더불어 자연의 위대함을 한번쯤 되새길 테고 말이죠.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그동안 가뭄이 지속되는 내내 페트병에 물을 담아 양손에 들고서 산 위에 있는 밭을 힘겹게 오가던 어르신 한 분을 매일 아침 등산길에서 보아왔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손바닥만 한 밭에 물을 대기 위해 기력이 쇠한 노인은 그 길을 몇 번이나 오갔을 것이며 가빠진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얼마나 여러번 쉬어야 했을까. 그에 비하면 비록 적은 양일지라도 한 번의 소나기는 얼마나 위대한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노인 한 사람의 손으로 잠깐 내린 소나기의 양만큼 한 지역의 산천에 물을 퍼 나른다고 가정하면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이면에는 외면했던 또 다른 시선이 있나 봅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낮았던 습도마저 높아지니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느낌입니다. 비오는 날 국물이 땡기는 것처럼 무더위가 시작되자 마자 밀어두었던 소설이 읽고 싶어집니다. 스미노 요루의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골랐습니다. 어쩌다 보니 두 권 다 일본소설이네요.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과 서명숙의 소설 <영초 언니>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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