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건 아니지만 책의 제목이 주는 은유가 소설 작품 전체를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시대의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1980년대 후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가 문학사상사에서 출간되었을 때 그 시대의 우울과 책의 제목이 절묘하게 결합돼 독자들을 홀리듯 서점으로 유인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왜?" 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알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서점의 한쪽 서가에서 말없이 책을 뽑아들고, 계산대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차례로 값을 치른 뒤 조용히 사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암울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향수처럼 퍼지는 쓸쓸한 가을밤에 권력의 부당함에 맞섰던 어느 예술가를 떠올렸었지, 아마도.

 

줄리언 반스의 소설 <시대의 소음(The noise of Time)>은 우리의 기억보다 더 먼 과거로 독자를 안내한다. 우리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로, 그것도 문학이 아닌 음악을 주제로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낯선 풍경에 처음부터 길을 잃는다. 그렇다. 이 소설은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다루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한 인물의 삶을 전기가 아닌 소설로 극화한다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인물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소설의 보편적 기법보다 훨씬 더 힘든 작업일지도 모른다. 독자는 익히 알고 있는 서사에 주목하기보다는 작가가 써내려가는 매 순간의 문장에 시선을 멈춘 채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의 감정이나 대사 등 오직 작가의 상상력에서 복원되는 소설 속의 상황이 얼마나 잘 현실감 있게 표현되고 있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볼 테니 말이다.

         

"어쩌면 그의 예술적 조숙함은 그가 평범하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그 세월들을 피해왔음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는 삶의 현실적인 면에는 젬병이었고, 물론 가슴의 현실성도 여기 포함되었다. 그래서 사랑의 기쁨과 섹스의 아찔한 자기만족과 함께, 아나파에서 그는 자신이 전혀 새로운 세계, 원치 않는 침묵과 잘못 해석된 암시들과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계획들로 가득한 세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깨달았다."    (p.50)

 

유명한 예술가들 치고 단 한 사람도 평탄한 삶을 살았던 적 없지만 쇼스타코비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제1장 '층계참에서', 제2장 '비행기에서', 제3장 '차 안에서'의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각 윤년마다(12년마다) 삶의 극적인 변화를 겪었던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상징적으로 나누고 있다. 19세에 졸업작품으로 작곡했던 1번 교향곡을 통하여 세계 무대에 당당히 등장했던 그가 스탈린 앞에서 했던 단 한 번의 연주 실수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까지 몰렸던 1장, 소련 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던 그가 냉전시대에 자신이 쓰지도 않은 연설문을 읽는 등 체제 선전에 앞장서는가 하면 우상이었던 스트라빈스키마저 배신했던 2장, 스탈린의 부름을 받고 명예를 회복한 그가 공산당 가입을 요청받게 되는 3장.

 

"이론들은 깔끔하고 설득력 있으며 이해하기 쉬웠다. 삶은 혼돈이고 허튼소리로 가득했다. 그는 자유연애 이론을 첫 번째로 타냐와, 그다음에는 니타와 실천에 옮겼다. 실은 둘 다와 동시에 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슴에 겹쳐졌고, 때로는 지금도 여전히 그랬다. 사랑의 이론이 삶의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느리고도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p.81)

 

작가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부당한 권력 앞에서 음악적 소신마저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쇼스타코비치의 내적 갈등을 철학적 명제들로 되살리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는 작가가 제시하는 명철한 문장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가 발표했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보여주었던 기록의 역사와 드러나지 않는 한 개인의 삶의 흔적과의 대비는 이 소설에서 시대를 장악하는 권력과 시대에 따라 형태를 달리 하는 여러 부조리,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민중의 목소리들로 대체된다. 인간의 삶은 결국 자신의 운명과의 한 판 승부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그는 항상 자신의 예술이 반귀족적이라고 생각했다."    (p.135)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두 가지 자료를 참조했다고 쓰고 있다. 엘리자베스 윌슨이 쓴 <쇼스타코비치: 기억되는 삶>과 솔로몬 볼코프가 엮은 <증언: 쇼스타코비치의 회상록>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유용한 자료도 있었지만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엘리자베스 윌슨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1953년 프로코피예프의 사망 이후 명실상부 러시아 최고의 음악가가 된 쇼스타코비치는 실제로 정치 회의에도 참가한 공산주의자였으나 작곡가로서 그는 당국의 정치적 이념을 자신의 음악에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았다. 엄혹한 시대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타협을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끝가지 포기하지 않았던 쇼스타코비치가 작가 줄리언 반스의 눈에는 매력적인 인물로 비쳤을 것이다.

 

"그가 바랐던 것은 죽음이 그의 음악을 해방시켜주는 것, 그의 삶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 것이고, 음악학자들이 논쟁을 계속한다 해도 그의 음악은 자기 힘으로 서기 시작할 것이다. 전기뿐 아니라 역사도 희미해져갈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교과서 속의 말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면 - 여전히 들어줄 귀가 있다면 - 그의 음악은…… 그냥 음악이 될 것이다.작곡가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p.257)

 

이 소설은 자신의 운명 앞에 누구나 느끼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삶을 끝까지 움켜쥔 채 작곡가로서의 의무를 다하려 했던 어느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작가 줄리언 반스의 찬사의 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작가는 쇼스타코비치의 삶이라는 형식을 빌려 음악과 삶, 권력과 체제, 예술과 진실을 그 형식의 내용으로 담아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독자가 읽는 이 소설은 줄리언 반스가 창조한 시대 뒤편의 진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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