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척은 늘 느닷없고 갑작스러운 순간에 찾아오곤 한다. 반소매 셔츠를 입기 시작한 지가 한참이나 지났으면서도 여전히 조금 더운 봄날이려니 할 뿐, '아,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이다. 여름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척척 감겨오는 옷자락과 닦아도 닦아도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 땀방울을 바라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져들고 '아,이제는 정말 여름이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겨울에 비하면 여름은 쉽게 넘길 수 있는 계절이었다. 지금에 비하면 사정없이 추웠던 날씨도 날씨려니와 부실한 입성으로 인해 겨울이면 언제나 동상을 달고 살았고, 추위와 고통을 동반하는 그 계절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던 겨울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여름은 쉽고 헐거운 계절이었다. 적이나 더울라치면 강에 나가 멱을 감으면 되고, 배가 고프면 피래미를 잡아 어죽을 끓여먹을 수도 있고, 밭두렁의 개똥참외를 따 먹을 수도 있으니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따뜻해진 겨울 날씨와 보온이 잘 되는 겨울옷, 단열이 잘 되는 주택 등으로 인해 겨울이라기보다 가을이 조금 길어진 느낌이 드는 반면, 여름은 예전에 없던 불볕 더위와 끈끈한 습기, 시도 때도 없는 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길어진 계절에 더해 우리가 견뎌야 할 고통지수가 몇십 배 증가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길어지는 가뭄과 일찍 시작된 더위로 인해 올 여름을 어찌 날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게다가 한여름에 조류독감이라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여름을 나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요즘이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한 데 대한 대가라면 대가이겠지만 여름이 이렇게 혹독한 계절로 변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오늘 아침에도 산을 내려오며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두 손 가득 주웠다. 자연에 대한 속죄인 양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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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6-1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일을 하시는군요. 버리는 사람 따로 줍는 사람 따로인 것도 문제지만,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부지기수인데 줍는 사람은 극소수인 것이 더 심각하지요.

꼼쥐 2017-06-10 17:30   좋아요 0 | URL
빈손으로 내려오기도 민망해서 매일 아침 쓰레기라도 줍자 생각했을 뿐입니다. 무거울 만큼 많은 양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라서 습관처럼 하고 있습니다. ㅎ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죄의식 없이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