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기온이 20도 안팎을 오르내리면서 거리에는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계절은 시나브로 여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산에도, 아파트 화단에도 우르르 핀 철쭉 군락이 마치 연분홍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화사하다.

 

엊그제 밤에는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주최 19대 대선 후보 초청 1차 TV토론회'를 보았다. 크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시간적 여유도 있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기에 보았을 뿐이다. 대선 후보 토론이 이전에도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그저 얘기로만 들었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재미있었다. 토론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토론에 참가한 대선 후보들의 말과 행동, 표정과 몸짓이 여느 개그 프로를 뺨칠 정도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빵빵 터뜨리게 만들었다.

 

출연진은 다음과 같았다. 도덕성이란 도덕성은 모두 개에게나 줘버린 능구렁이, 징징거리며 떼를 쓰는 초등학생, 깐족거리며 공부만 잘 하는 우등생, 거칠 것 없는 여장부, 심한 말을 하는 게 못내 어색한 옆집 아저씨 그리고 그들의 난장을 말리지 못하는 사회자. 역시 압권은 '내가 갑철수입니까?', '내가 mb아바타입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실망입니다',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겠습니다'에 이르러서는 웃음을 꾹꾹 눌러 참던 시청자들을 완전 무장해제시켰다.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다. 그동안 웃을 일이라고는 없었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덧붙여 그동안 우리나라의 보수당이 얼마나 쉽게 선거운동을 해 왔는지도 토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유력한 야당 후보를 향해 '빨갱이', '친북 좌파', '김정은이 하수인' 등 근거도 없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면 국민들은 그것이 진실인 양 받아들이고 결과적으로 보수당의 후보는 큰 노력도 없이 손쉽게 승리하곤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인지 '돼지 흥분제'를 먹고 나온 듯한 보수당의 후보는 근거도 없는 말로 눙치며 토론을 이어갔다.

 

사실 우리나라의 헌법을 보면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국가 독립과 영토 보전의 의무,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수호의 책무, 겸직 금지 의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노력 의무, 취임 선서문 상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보수당이 대통령 직위에 있을 때 북한과의 강대강 대치 속에 대화 한 번 하지 않았으므로 평화적 통일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대통령으로서는 직무유기를 범한 셈이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뻔뻔스럽게 북한과의 통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지 않은가. 그뿐인가. '돼지 흥분제' 자서전에 이어 '설거지는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등 성차별적 언사도 거리낌없이 하지 않던가. 우리는 지금껏 함량미달의 후보를 검증도 없이 뽑아 왔던 건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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