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겨울인들 매섭지 않았으랴만 유독 올 겨울을 스산했던 계절로 기억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최순실의 태블릿 pc에서 비롯된 길고 무자비했던 혼란과 이를 무마하기 위해 갖은 발악과 추태를 보였던 여당과 친박 단체의 민낯을 시도 때도 없이 보아야만 했기 때문일 터였다. 기나긴 터널을 간신히 통과한 느낌이다. 그러나 어둠의 끝이 항상 밝음이라는 건 어느 동화책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법과 상식을 무시하는 무자비한 인간들이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살아 있는 한 어둠의 예감은 곳곳에서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그동안의 혼란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느껴질 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왔던 정직한 기자들이 모두 잘려나간 대한민국의 언론 현실에서 누가 나서서 알려준 것도 아닌데 우리는 제 스스로 소위 보수(합리적인 보수를 제외한 수구 꼴통이라고 해야겠지만) 세력의 정체와 그들의 민낯을 똑똑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요, 법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폭력과 위협, 그리고 협박 등의 그들이 저질렀던 온갖 불법행위가 지난했던 대한민국의 겨울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준법을 유난히 강조했던 대통령과 법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었을 때만 법치를 강조하던 무리들은 이제 더이상 법이 그들의 안하무인과 법 위에서의 군림을 용인하지 않게 되었음을 알았다. 망나니와 같았던 그들을 유난히 감싸고 편애했던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더이상 자신들의 편에 설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절망 대신에 이성을 상실한 듯한 과격한 행동으로 우리들 앞에 섰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추하고 저속했다. 법치와 자유를 사랑하는 보수의 품격은 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보수의 몰락을 원하지 않는다. 상식과 법률에 기초한 건전한 보수, 자유와 공정을 사랑하는 합리적인 보수의 출현을 누구보다도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은 죽어야 한다. 죽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없다. 우리는 지금 가짜 보수, 양의 탈을 쓴 대한민국 보수의 민낯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이 몰락하지 않는 한, 그들이 철저히 죽지 않는 한 새로운 보수는 태어나지 않으리라.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