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기나긴 그리움을 경유할 때 아름답다. 오랜 세월을 통과하여 동글동글 깎이고 다듬어진, 바람인 양 햇살인 양 순한 그림자처럼 마모된 슬픔이 어느 날 갑자기 우연처럼 젖어들 때, 순한 빗소리의 슬픔은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다 마침내 다다른 어느 집 처마밑처럼 뭉근하고 안온한 느낌의 슬픔이 서서히 번져갈 뿐이다.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여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기쁨과 슬픔에 대해 말씀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가 답했다.
그대의 기쁨은 가면을 벗은 슬픔이니 그대의 울음이 솟는 그 샘이

때로는 그대의 눈물로 채워지는 것과 같이 그 둘은 똑 같은 것이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슬픔을

너희 존재속으로 보다 깊이 새길수록 더 많은 기쁨을 지니게 되리라.

그리고 알고 보면

너희가 포도주를 담는 바로 그 잔이 옹기장이의 가마에서 구워진 그 잔이며,

그대의 영혼을 달래는 그 류트(lute)란 칼로 속이 비도록 파내고 다듬은

바로 그 나무가 아닌가?

 

그대 기쁠 때 그대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라.
그러면 그대는 발견하게 되리라.

그대에게 슬픔을 준 바로 그것이 그대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대 슬플 때도 역시 그대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 보라.

그러면 그대는 보게 되리라.

그대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그대가 지금 슬픔에 젖어 있음을.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기쁨이 슬픔보다 위대해" 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니야, 슬픔이 기쁨보다 위대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둘은 서로 나눌 수 없는 것" 이라고 말하리라.
그들은 언제나 함께 온다.

그리고 하나가 그대의 식탁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다른 하나는 너희의 침대에 잠들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들은 슬픔과 기쁨 사이에 저울처럼 매달려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오직 그대들이 스스로 자신을 비웠을 때 그대의 영혼은 멈추어 균형을 이루리라.
그리하여 하늘의 보물을 지키는 이가 자신의 금과 은의 무게를 달고자

그대를 들어 올릴 때 그대의 기쁨과 슬픔 또한 오르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임을.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중에서)

 

어제 저녁에 나와 만나 자신의 슬픔을 털어 놓은 젊은 친구도 기나긴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지금의 슬픔이 마치 깊고 짙은 비올라의 선율처럼 그저 몸 속 깊이 스며들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슬픔은 그저 아래로부터 천천히 차오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세월을 통과한 순한 슬픔은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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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2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딩때 심취했던 칼릴지브란의 시네요
꼼쥐님께서 인용하실줄이야^^;; 반갑네요

꼼쥐 2017-02-24 16:12   좋아요 1 | URL
칼릴지브란의 <예언자>는 언제 읽어도 좋은 것 같아요.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말이 그 얇은 책 한 권에 모두 들어 있는 느낌이에요.

북프리쿠키 2017-02-24 16:16   좋아요 0 | URL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이 책도 너무 좋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