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 평범한 사람들의 기이한 심리 상담집
타냐 바이런 지음, 황금진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보다는 오히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내 기준에 의해 누군가를 재단하거나,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적대시하거나,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반응에 당황하거나 호들갑스럽지 않게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결국 '나와 너는 다르다'라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관계로부터 배우는 이러한 사실을 도외시한 채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를 나 스스로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허튼 기대로 인해 짧은 만남과 그로 인한 상실의 고통만 경험하는 건 아닌지 조용히 뒤돌아보게 됩니다.

 

새벽까지 달이 밝았습니다. 푸르게 쏟아지는 달빛에 의지하여 산길을 오르노라면 달빛에 비친 어룽어룽한 나무 그림자와 고즈넉한 새벽 숲의 고요가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합니다. 내가 즐겨 찾는 이 자연이 아니었다면 나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그 숱하디숱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겸허히 수용하기는커녕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고 미워하고 내 속을 박박 긁는, 그야말로 아수라의 세상을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만큼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무척이나 운이 좋았던 셈이지요.

 

"요컨대 온전한 정신의 끝은 어디며, 정신이상의 시작은 어디인가? 우리 중에서는 운 좋게도 스스로 혹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망 내에서 인생의 난관을 용케 잘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이들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스스로를 '성공했다'고 규정한다. 반면 우리 중에는 계속 부인하거나 자신의 불운을 투사할 대상을 찾아냄으로써 문제에 대응하는 이들도 있다." (p.429)

 

타냐 바이런이 쓴 <소녀는 왜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는 우리는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심리 상담 사례집입니다. 영국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아동 심리학자로 25년간의 임상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저자는 실습생 시절에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나는 정신분석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정신 분석가들이 그렇게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지 않았다면 나도 정신분석 이론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신분석가들은 세상에서 자기들이 제일 잘난 줄 알고 있었고 오로지 자신들만이 정신 건강의 바이블을 읽고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삶의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는 쥐고 있지만 정작 그 근거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신분석 이론은 언제나 지나치게 종교적인 느낌이었다." (p.85)

 

'집안의 치부 혹은 비밀'이라는 의미의 '해골 찬장'(The Skeleton Cupboard)'이 원제인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야말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살았던, 그렇지만 내가 아닌 '너'로서 현실에 존재하는 호모 속의 호모 사피엔스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타냐의 목에 흉기를 들이댔던 소시오패스, 어린 시절 계부로부터의 성추행을 경험했던 소녀가 연못에 빠진 동생을 구하지 않게 된 사연, 결혼을 앞두고 성적으로 무관심해진 커플, 좋은 집안과 개인의 재능을 모두 갖추었지만 거식증에 걸린 소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던 중 자신조차 치매 증상을 보이는 할아버지, 인생의 말년에 알게 된 친딸의 생존 소식과 만남을 거부한 모녀, 약물중독과 HIV 환자 등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웃의 사연을 저자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자세히 들려줍니다.

 

"자, 이제부턴 솔직해지자. 어떤 아이의 인생을 180도 좋은 방향으로 바꿔놓아 이제 그 아이가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아이를 죽고 싶게 만든 이 거지 같은 세상으로 다시 내보내야 한다면그게 얼마나 어려울지 상상이 되는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내 보호 본능을 재단하기 전에 당신들의 보호 본능부터 들여다보길 바란다." (p.114)

 

어렸을 적에 계부로부터의 지속적인 성추행을 경험했던 이모젠은 자신이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연못에 빠진 여동생을 일부러 구하지 않았습니다. 계부와 친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동생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모젠에게는 계부이자 여동생에게는 친아버지인 그 사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이모젠이 상담을 통하여 좋아졌으므로 다시 사회로 네보내진다고 할 때 저자는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분노합니다.

 

"해럴드 할아버지는 너무나 신사다운 분이기 때문에 나에게 그 점을 대놓고 지적할 수는 없었지만 그분의 침묵은 내게 정신적 고뇌를 겪고 있는 다른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절대로 잊지 않는 교훈을 한 가지 깨우쳐주었다. 인간인 우리는 대개 중대한 일에 진땀을 빼지만 가장 큰 의미를 지니며 가장 큰 절망을 초래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사건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해럴드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할머니한테 책임지고 감을 사다줄 수 없게 된 것이 바로 그랬다." (p.225)

 

해럴드 할아버지의 사연은 이모젠보다 더 기구합니다. 나치 수용소의 생존자였던 해럴드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는 자식도 없이 온전히 두 부부만 서로를 의지한 채 살다가 아내가 치매에 걸려 요양소 생활을 하게 되자 해럴드 할아버지는 아내를 살뜰히 돌봅니다. 그러다 자신마저 정신이 희미해져 간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위의 인용문에서 저자가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큰 절망을 초래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사건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해럴드 할아버지에게는 아내가 좋아하는 감을 사다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체육공원 트랙을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을 헐떡인다든가, 가볍게 지면에 닿을 줄 알고 높지도 않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수리까지 찌르르 전해오는 울림을 감지할 때 그 절망감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행복이란 아주 사소한 일을 오늘이고 내일이고 끝없이 반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큰 일을 성취했을 때의 일시적인 행복만 쳐다볼 뿐 정작 사소한 일을 반복할 수 있는 커다란 행복은 눈에 띄지 않는가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