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 인근에는 같은 이름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나란히 붙어 있다. 차량 통행이 많은 편도 일차선의 도로에 인접해 있는 까닭에 운동장을 둘러 싼 울타리가 꽤나 높은 편인데 아마도 아이들이 갖고 노는 공이 차도로 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오가는 차들을 제외하면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이라 학생들의 안전을 고려해서 그리 만들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무튼 나는 그 학교와 인접하여 산다는 것만으로 학교에서 적잖은 혜택을 누리고 사는지라 학교의 시설물이나 정원수 또는 학생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누리는 혜택이란 게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따금 한가로운 시간이 날 때면 가볍게 산책을 하는 장소로 이용한다거나 갑자기 몸을 움직여 땀을 내고 싶을 때 축구공이나 농구공 하나 들고 가서 시간을 보내는 정도이다. 그렇다고 학교에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도 아니니 나로서는 여간 고마운 게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 학교의 울타리 주변에는 암적색의 철 지난 넝쿨장미가 열을 맞춰 피어 있는데 나는 그 주변을 지날 때마다 시들어가는 꽃 옆에서 한나절 눈을 감고 누워 있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한나절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면 가을이 훌쩍 지나 있을 것만 같다. 바야흐로 조락의 계절, 시들어가는 붉은 꽃들이 아쉬운 시간을 붙들고 있는 모습은 애처롭다기보다는 오히려 처연하다. 내가 느끼는 처연하다는 감정인 즉 과거로 회귀하는 그리움을 껴안고 생겨난 것이기에 시들어가는 장미의 꽃송이나 그 위에 떨어지는 가을 햇살이 마냥 애틋하기만 하다. 그 곁을 스치듯 걷는 철부지 학생들의 왁자한 웃음이 때로는 나의 어린 시절과 겹쳐져 발걸음을 붙잡기도 한다.

 

이렇듯, 과거의 추억은 대개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향수에 젖게 하거나 그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은 간절함을 낳는다. 가을에 유독 우리가 추억에 젖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생명이 스러지는 주변 풍경을 보면서 자신도 문득 그와 같이 쇠락의 길로 접어 들고 있음을 감지하는 순간, 과거의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부 여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 가을에 그런 주장을 내세우는 데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조락하는 계절에 자신의 신세 또한 처량해지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 계절에 떠오르는 추억은 모두 아름답게만 느껴져 그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은 욕구는 한층 강해지는 것이다. 나는 자신들의 쇠락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 몸부림 치는 그들의 처절한 발악이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현재의 잘못이 역사를 잘못 배운 젊은이들 탓인 듯 덮어 씌우려는 생각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장 부러워 하는 것은 바로 젊음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부끄러워 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지금까지 무엇 하나 고쳐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고쳐질 가능성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단지 과거의 잘못만 문제 삼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다면 낮은 취업률도 견딜 수 있고, 원칙만 지켜진다면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도 당당히 내보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부끄러운 이유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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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vdlEjfdjwlrh 2017-07-10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비가옵니다.오랜만에.장미는 지난 뙤약볕에도 묵묵하게 자태를뽐내고 초라하지않게 고개를떨구고 또 내년을 기약할것입니다.빗방울에 잎들도 나뿌끼고.자연.비..비....장미.이계절데로 감사하며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