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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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 앞으로는 소리가 지워진 창밖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밀폐된 창을 통과한 빛의 풍경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집니다. 마치 우리네 삶에서 시간을 솎아낸 듯한 가볍고 어색한 몸짓들이 의미도 없이 펼쳐지는 것 같군요. 아무도 없이 텅 빈 영화관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성영화를 볼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요? 빛이 흘러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 안에 오래도록 앉아 있어 본 사람이라면 혹시 제 기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숨소리도 누른 채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한동안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온 몸을 감싸게 되지요. 사람은 때로 자신의 감각기관 중 어느 하나를 잠시 쉬게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예술적 영감이 샘솟는 시간은 바로 그런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의 감각이 활동을 멈춘 바로 그 순간에 대상도 알 수 없는 어떤 분이 '옛다, 받아라.' 우리를 향해 던져주는 게 바로 예술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9월도 벌써 반이 지난 지금, 저는 무척이나 바빴던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며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망중한을 즐기는 셈이지요. 어느 때부터였는지 기억에도 없지만 저는 언젠가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야지 생각했으면서도 속이 채워지지 않은 도시락처럼 약속은 언제나 헛헛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게 들어오는 어떤 것들도 다 때와 장소를 가려 인연을 맺는 것인가 봅니다.

 

"떠난다는 것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자 낯선 것과의 새로운 만남, 낯선 것이면 무엇이든 두려워서 여행을 떠나는 날이면 내 목은 자주 부어 올랐고 그래서 포기했던 떠남이 내게는 많았다. 비단 여행뿐 아니다. 살면서 떠나야 할 시간에 떠나지 못해 주저앉은 적도 많았고 나중에는 그것이 아까워서 바득바득 살아야 했던 적도 많았다." (p.10)

 

2000년 말의 작가의 모습은 작가에게도 이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젊어 보입니다. 젊다기보다 '앳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그런 모습입니다. 대학교 2학년 이후 18년 동안이나 교회와 신앙을 떠나 있었다는 작가는 수도원 기행을 의뢰받고서 꽤나 놀란 듯했습니다. 엄마 역할에 힘들어하던 차, 친구에게 무심코 했던 '유럽의 수도원에 가서 한 달만 쉬었다 오고싶다'는 빈말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기억에도 없는 오래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긴 시간을 앉아 있는 것처럼 이따금 현실은 마법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르정탱 베네딕트 수도원을 시작으로 작가의 수도원 기행은 계속됩니다. 솔렘 수도원, 테제 공동체, 오뜨리브 수도원, 몽포뢰 도미니크 수도원, 림부르크 수도원 등 작가가 다녀온 행선지를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국땅의 낯선 지명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만, 언젠가 읽었던 어느 책에서 저는 테제 공동체에 대해 조금쯤 알게 되었고 그들의 신앙에 깊이 공감했었습니다. 교리를 넘어선 침묵의 영성으로 방황하는 세계 젊은이들의 영적인 길라잡이가 되고 있는 테제 공동체를 방문했던 작가의 느낌이 저는 몹시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저 젊은이들의 앞날이 밝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세상은 수도원이 아닌 것이다. 나 역시 다시 젊어지고 싶지는 않다. 젊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라고 나는 아직도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원칙과,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우리가 택할 길은 몇 개 안 된다는 현실과의 괴리가 괴로운 것이다. ...하느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우리는 방황하리라, 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노트에 적어가지고 다니던 내 사춘기가 떠올랐다." (p.108)

 

아니, 또 있습니다. 제가 문학적인 감성의 소유자라서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나오는 숄 남매와 그들이 다녔던 뮌헨대학을 작가가 방문했다는 사실에 저는 '좋았겠네.' 약간의 시기심인지, 부러움인지 묘한 감정을 느꼈던 것입니다. 숄 남매가 남긴 유인물 유적지에 감동을 받았던 것인지, 아니면 민주화를 위해 애쓰다 허무하게 쓰러져 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애달팠던 것인지 작가의 글은 감상적으로 변합니다.

 

"나도 그들에게 이런 유인물의 유적을 만들어 주고 기념관 하나 세워주고 싶었다. 여기가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러나 끝내는 돌을 들었던 그 자리라고... 비겁해서 뒤로 물러났던 우리 대신, 그들은 앞으로 달려나갔다고. 무섭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님 고생하시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출세하고 잘 먹고 잘사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러므로 그때 젊었던 그들, 그렇게 젊을 때 죽어버려서 우리를 오래 아프고 오래 숙연하게 하는, 그러므로 언제까지나 젊은 우리들일 그들에게." (p.162~p.163)

 

날이 흐린 탓인지 벌써 저녁 느낌이 묻어 납니다. 게다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은 노을에 물든 고즈넉한 들녘을 배경으로 그려진 밀레의 만종晩鐘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록 몸은 고단하지만, 때마침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만종에 맞춰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기도하는 젊은 농민 부부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내 인생에도 황혼이 깃들고 만종이 울리면 나를 위해 기도해줄 이 한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눈을 들어 유모차에서 잠에 빠진 아기를 바라보았다. 저 아기는 커서 어른이 되기 위해 또 얼마만큼의 상처를 필요로 할 것인지. 성스러운 수도원 기행이 끝났는데 나는 왜 기쁘지가 않고 이런 쓸데없는 연민에 빠져 있는지. 하지만 아기와 젊은 아기엄마에 대한 불길한 예감 때문에 마음이 자꾸 무거워지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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