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어제도 야구중계가 있었다.

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나야 뭐 야구에 목을 매는 사람도 아니고, 내 돈을 내고 야구장을 찾는 사람도 못 되지만 프로야구의 개막은 겨우내 우울했던 기분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다. 야구에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야구가 국민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계절이 바뀐 탓으로 돌리기에도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유년시절의 나는 야구에 대한 규칙도 모른 채 동네 아이들 틈에 끼여 이따금 야구를 하곤 했었다. 변변한 배트도 없고, 글러브도 없었지만 아이들은 신문지로 접은 글러브와 적당한 크기의 나무 몽둥이만 들고도 하루 온종일 야구를 했었다. 땅거미가 지고 '아무개야, 저녁 먹어라' 소리가 온 동네에 메아리칠 때까지. 야구공 대신 사용하던 털 뽑힌 테니스공을 들고 온갖 기묘한 자세로 공을 던지는가 하면 공터를 벗어난 테니스공을 찾아 한참을 헤매곤 했었다. 고교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청룡기,봉황기, 황금사자기 등 지역과 모교의 명예를 걸고 참가했던 고등부 야구선수들의 꿈과 열정은 프로야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는 내용상으로는 박민규가 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떠올리게 했고,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천명관의 <고래>를 생각나게 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야마다 오쿠(王求)'의 부모인 야마다 료와 야마다 기리코는 만년 꼴찌팀인 '센다이 킹스'의 열혈팬이다. 오쿠가 태어나던 날 '센다이 킹스'와 '도쿄 자이언츠'의 경기가 있었다. 그 경기에서 '센다이 킹스'의 감독 '나구모 신페이타'는 파울볼을 피하려다 머리를 다쳐 사망한다. 그 바람에 오쿠의 부모님은 '도쿄 자이언츠'팀을 극도로 싫어하게 된다.

 

"산부인과 침대에 누워 모유를 실컷 먹고 잠이 든 너를 바라보며 어머니의 머릿속에 반짝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장차 센다이 킹스에서 활약하는 사내가 될 텐데 왕(王)이라는 한자를 쓰지 않는 건 이상해." 왕이라는 한자를 쓰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왕이라는 한자를 쓰는 게 어떠냐는 것도 아니고, 왕이라는 한자를 쓰지 않는 건 섭리에 맞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너의 아버지도 즉시 찬성했다. "그렇지! 장차 센다이 킹스에서 원하게 될 존재니까, 왕을 원한다는 뜻으로 '오쿠(王求)'는 어떨까?" 라고 제안했다." (p. 34)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오쿠의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초등학교 시절 프로야구 투수의 전력투구를 받아쳐 홈런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방과 후 야구 연습장에서의 배팅 연습에서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한 후 불량한 선배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집에 돌아갔던 어느 날 오쿠의 아버지는 아들 몰래 선배 한 명을 살해한다. 오쿠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살인죄로 구속되고 비난을 견디지 못한 오쿠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둔다.

 

학교를 자퇴하고 혼자 연습을 계속하던 오쿠는 센다이 킹스 입단 테스트에 참가한다. 프로구단의 선수가 된 오쿠는 투수들의 집중견제 속에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으로 걸어 나갈 수밖에 없다. 오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도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살인범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그를 괴롭힌다. 그리고 야구 천재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결국...

 

"그리고 그 말은 너의 부모가 심취했던 선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다시 한번 이름으로 말하자면, 나구모 신페이타가 현역 시절에 남긴 대사와도 겹친다. 잡지 <월간 야구팀>에 실렸던, 정말로 코딱지만 한 인터뷰 기사에 나온 말이다. "주위에서 '너희 팀은 너무 약하다, 최저다' 욕을 하면요, 필사적으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요. 플레이를 하는 건 나니까 나는 나의 플레이를, 나의 야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내 인생에 대타는 있을 수 없으니까요." (p.167)

 

작가는 마치 야마다 오쿠의 전기문을 쓰는 것처럼 중간중간에 천연덕스럽게 등장하곤 한다. '그 시점에서 야마다 오쿠의 야구 인생이 겨우 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p.242)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에서도 작가 천명관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신파극의 변사처럼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던지는 족족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위해 오쿠와 같은 천재의 출현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천재는 노력하는 둔재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단지 걸림돌로 작용할 뿐 그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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