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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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지?' 의아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사람들의 기호도, 관심도, 웃음이나 낭만 코드도 다 제각각이니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최근에 골랐던 책 중에는 마저 다 읽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던 책이 있다. 요나스 요나손이 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그것이다. 황당한 이야기의 연속, 나의 웃음 코드와는 번번이 빗나가는 썰렁함, 낯선 지명과 이름들의 연속, 도대체 나는 뭘 의지하여 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이 얇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다 읽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그랬던 게 엊그제인데 또 다시 나는 요나스 요나손의 책을 고르고 말았다.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그것이다. 저자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고른 내 잘못이 컸지만 책을 읽기도 전에 하품부터 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런 젠장! 한바탕 욕이라도 퍼붓고 나면 속이라도 후련하련만 집에 들어 오는 순간부터 내 대화 상대라고는 TV나 라디오, 컴퓨터가 유일하니 그들이 내 욕설에 맞장구를 쳐줄 리도 만무하고 등을 토닥이며 한마디 위로의 말을 건넬 리도 없지 않은가.

 

눈물을 머금고 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읽어야지', 이를 악물었다. 장장 541쪽의 험난한 여정. 이건 뭐 숫제 마운틴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거나 진배없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읽어나갔다. 소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 남동쪽 소웨토(흑인 거주지)에서 시작된다. 시너에 중독된 엄마를 돌보며 생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날라야 했던 소녀 놈베코. 분뇨 수거인에서 갑작스레 관리자가 된 그녀는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던 옆집 아저씨로부터 글을 배우고 매일같이 라디오를 들으며 똑똑하게 말하는 방법도 터득한다. 유난히 셈에 밝았던 그녀는 우연히 손에 넣은 다이아몬드를 들고 소웨토를 탈출한다. 단순히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목적으로.

 

놈베코는 보도를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지만 보상을 받기는커녕 가해자에게 보상하기 위해 7년 동안의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가 간 곳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던 비밀 연구소 '펠린다바'. 교통사고 가해자였던 엔지니어는 그 연구소의 연구소장으로서 그는 오로지 아버지의 권력과 부유함 그리고 넘치는 행운으로 남아공 최고 핵 전문가가 된 인물이다. 놈베코는 연구소에 있던 모든 책을 독파하여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던 엔지니어를 도와 무난히 핵폭탄을 생산하게 되지만 생산된 핵폭탄은 여섯 개가 아닌 일곱 개였다.

 

연구소를 감시하고 있던 이스라엘 첩보원 모사드 A와 B를 따돌리고 스웨덴으로 망명한 놈베코. 그러나 그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잘못 배달된 핵폭탄 한 기를 떠안게 되고 망명자로서 인정도 받기 전에 핵폭탄과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다. 여차저차 하여 놈베코는 둘 중 하나만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쌍둥이 형제 홀예르1, 홀예르 2. 그리고 CIA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불안증에 걸린 미국인,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짝퉁 사기'를 일삼는 중국 여자들과 철거 예정지의 주택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핵폭탄 처리 방법을 고민하면서 말이다.

 

놈베코는 그 와중에도 스웨덴어를 배우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홀예르 2를 사랑하는 놈베코와 존재하지만 생각할 줄 모르는 홀예르 1을 사랑하는 셀레스티네의 좌충우돌 생활기가 그려지고 놈베코는 결국 스웨덴 수상과 국왕을 만남으로써 핵폭탄을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스웨덴 방문 기념품과 함께 중국으로 보낸다. 뿐만 아니라 놈베코와 홀예르 2는 수상의 도움으로 신분증을 획득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복귀한다. 스웨덴 대사의 자격으로 말이다.

 

작가는 황당한 인물과 황단한 설정을 통하여 세계의 역사를 풍자하고 가장 낮은 신분인 놈베코로 하여금 지배층을 조롱하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체제를 비판한다. 작가의 생각은 여과없이 소설에 반영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핵무기의 개발, 인권이나 환경문제 등 현대 사회의 부조리가 패키지로 등장하는 셈이다.

 

 "이로써 조지 W. 부시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반면, 알 고어는 심지어는 스톡홀름의 아나키스트들조차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시한 환경 운동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부시는 사담 후세인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무기들을 모조리 파괴해 버리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p.386)

 

작가는 분명 특이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나와는 웃음 코드가 맞지 않았을 뿐. 얼마 전에 읽었던 천명관의 <고래>만큼이나 새로운 소설이지만 서양 작가의 풍자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작가의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인지 아무튼 나는 힘겹게 읽었다. 정말 힘들었다. 힘들다는 게 감상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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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4-12-03 23:48   좋아요 0 | URL
아직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사 놓고 읽지 못하고 있는데요....저도 끝까지 못 읽으면 어쩌죠...

꼼쥐 2014-12-04 18:1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 악물고 한번 읽어보시죠. 그러다 이가 부러지면 책임질 수는 없지만.

별족 2014-12-04 09:05   좋아요 0 | URL
저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끔찍했어요-_-;;;

꼼쥐 2014-12-04 18:14   좋아요 0 | URL
저는 다 읽지도 못하고 중도 포기했어요.ㅜㅜ

완벽한위로 2014-12-04 10:03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던 100세 노인을 정말 힘들게 읽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네요. -ㅁ-;

꼼쥐 2014-12-04 18:15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책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것 같아요.
최악이거나 최상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