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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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해 겨울방학에 나는 '명심보감'을 외우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뜻하는 바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당시 어머니는 하숙을 쳐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계셨고, 하숙생 중에는 몇 달 밀린 하숙비를 떼어 먹고 야반도주를 하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그 사람들은 으레 필요도 없는 옷가지며 자질구레한 가재도구를 마치 꼭 다시 오겠다는 맹세의 일환인 양 손도 대지 않은 채 떠나가곤 하였다.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올 것을 굳게 믿었던 까닭인지 아니면 물건에서 어떤 단서를 찾기 위함이었는지 어머니는 언제나 그 물건이 놓였던 자리를 한동안 정리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놓아두셨다. 약간의 미련이 묻은 그 옷 보따리를 말이다.

 

그해에도 그렇게 떠난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옷 보따리 속에서 모서리가 너덜너덜 닳아빠진 책 한 권을 발견하였다. '명심보감'이었다. 기껏해야 '아들 자, 계집 녀'를 지나 '배울 학, 학교 교'의 수준에 이르렀던 나의 한자 실력으로는 눈에 익은 글자를 찾아내는 데만도 가뭄에 콩나듯 하였다. 버릴까? 하다가 왜 갑자기 마음을 돌이키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불현듯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전에 없던 호승심이 치솟았던 것이다. '이번 겨울 방학에 이 책이나 외워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친구들 앞에서 어려운 말을 줄줄 읊어대는 내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가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이었다. 참으로 인연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명심보감' 외우기는 그해 겨울의 엄혹한 추위처럼 맵고도 쓴 것이었다. 자치기를 하자는 친구의 유혹도, 외발 스케이트를 타는 스릴도 꾹꾹 눌러 참으면서 나는 집 밖 출입을 삼가한 채 명심보감과 한자 사전을 끼고 살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참담했다. 명심보감 초략본 19편 247조 중 계선편 11조를 간신히 외웠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알량한 지식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자왈, 위선자 천보지이복'으로 시작되는 명심보감의 문구를 이제 막 변성기가 시작되는 걸걸한 목소리로 읊을라치면 친구들은 마치 공자의 현신을 뵙는 듯 존경과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하였다. 개중에는 그게 무슨 뜻이냐며 한수 배움을 청하는 친구도 가끔 있었다. 나는 그럴 때면 '네깟 것들이 설명을 해준들 이해나 할 수 있겠냐'는 표정으로 뒷짐을 진채 한껏 점잔을 빼곤 하였다. 나와 공자의 첫 만남은 그렇게 특별했었다.

 

내가 공자를 다시 만난 것은 대학 신입생이었던 어느 봄날의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였다. 친구를 기다리면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던 나에게 후광이 비치는 듯 밝게 빛났던 '논어'. 나는 익숙한 스승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웠었다. 그때 나는 '그래, 대학생이라면 적어도 '논어'는 읽어줘야지.'하는 심정으로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미련없이 꺼냈던 것이다. 스승님을 다시 뵙는데 그깟 돈이 대수이겠는가. 그러나 '논어'의 한 구절 한 구절의 깊이는 '명심보감'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 내내 잘 읽지도 않는 논어를 마치 부적처럼 가방에 고이 모시고 다녔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만 주야장천 읊어대면서. 그랬던 내가 최근에 공자를 다시 만난 것은 우간린의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통해서였다. 나에게는 이제 유식한 문구를 읊어댄다고 해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봐 줄 만한 친구도 없고, 그때의 치기는 더더욱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단순한 한자의 뜻풀이가 아닌 이야기와 에피소드의 방식으로 쓰였으므로 마음을 담아 조용히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공자의 가르침은 고지식하다거나 구태의연하다고 말한다.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장 보편적인 지혜는 쉽게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심오한 진리를 쉽게 설명하기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을. 이제 나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乎)'의 의미를 간신히 깨우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아는 공자는 자신의 지난했던 삶의 체험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무엇보다 가장 쉬운 말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위대한 스승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 깊은 의미를 새록새록 깨닫게 되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아, 진즉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때늦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초석이다. 단언컨대 공자의 가르침을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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