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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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과 다듬고 매만져 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매끈해진 소설 중 어느 쪽이 더 현실감있게 느껴지나요?  나는 어떤 작품을 읽든, 그것이 소설이든, 시이든, 수필이든 '현실감'이라는 단어를 늘 생각하곤 합니다.  문학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할 때. 우리는 종종 현실의 모습을 곧이곧대로 그린 작품이 더 현실감있지 않을까 착각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착각이죠.  실상 현실을 조금만 섞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다듬어진 작품에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썽둥이처럼 닮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부끄러운 현실, 더럽고 추잡한 인간 군상, 그날이 그날 같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누군가의 작품 속에서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까닭이지요.  어쩌면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욕구가 투영된 글이라고 하겠습니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소설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는 이따금 우리가 사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그닥 아름답지 못한 소설을 만나게 됩니다.  현실에서도 늘 보고 듣는 모습을 소설 속에서조차 또 마주한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닐 것입니다.  지겨운 생각마저 들겠지요.  그런 게 내가 사는 현실이 아니다 부정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약간의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즐겨 찾는 작품이 있습니다.  오쿠다 히데오나 리 차일드, 때로는 빌 브라이슨의 작품이 그것입니다.  감 잡으셨겠지만 오쿠다 히데오나 빌 브라이슨은 자신의 작품 속에 위트와 유머를 적절히 사용하는 작가이고 리 차일드는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듯 박진감있고 스릴 넘치는 스토리 전개로 유명한 작가죠.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 웃을 일 없는 현실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일종의 기분전환용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이 이들 작가의 책에서 읽는 재미와 함께 생각할 거리도 제공받기 때문입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꿈의 도시>는 작가 본인의 성향과는 배치되는 그런 작품입니다.  위트와 유머를 걷어낸, 간결한 스토리에 문학적 수사를 배제한, 오직 작중 인물들을 통하여 현실의 민낯을 보여주고자 시도하는, 다소 엉뚱하고도 지루한, 그러면서도 600쪽이 넘는 긴 이야기를 담은 소설입니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는다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라고 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만 읽을까 몇 번이나 고민했습니다.  읽은 게 아까워서 그만둘 수 없었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3개 읍이 합병한 인구 12만의 지방 신도시 ‘유메노’시 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통합시라는 게 여간 문제가 많은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통합시라며 거창하게 출발했던 창원시도 얼마 전 회의석상에서 시장이 계란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까?  통합을 통하여 지역의 이익을 획득하려는 얄팍한 잇속을 버리고  통합을 거부한 채 자신들만의 생활리듬을 유지하며 조용히 살았더라면 그런 불상사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유메노'시는 시의 탄생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외부 인구의 유입과 상권의 변화, 그에 따른 범죄의 증가와 빈부 격차 등 긍정적 변화보다는 부정적 변화가 더 많아 보입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나이, 직업, 주변 환경, 가치관 등이 전혀 다른 다섯 주인공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가 펼쳐집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을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시청 생활보호과에서 생활보조비 수급 대상자를 상대로 일하는 공무원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아내의 외도로 이혼을 한 후 현청으로 옮겨갈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적당히 보내는 인물입니다.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어떻게든 유메노를 떠나고 싶은 여고 2학년생 구보 후미에는 어느 날 갑자기 게임에 빠진 은둔형 외톨이에게 납치됩니다.  폭주족 출신으로, 노인들만 사는 집을 골라 누전차단기를 교체해주고 엄청난 돈을 받아 사기를 치는 세일즈맨 가토 유야는 선배가 벌인 살인 사건에 본의 아니게 깊숙이 개입하게 되고, 소매치기를 잡아내는 보안 요원이자 이상한 종교에 빠져 있는 중년의 이혼녀 호리베 다에코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큰 무대에 진출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는 유메노 시의원 야마모토 준이치는 그의 조력자로 친분이 있었던 야쿠자 조직에 의해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됩니다.

 

사실 이 소설에서 전체적인 스토리는 무의미한 듯 보입니다.  소설의 끝부분에 발생하는 고통사고에 대부분의 인물들이 함께 등장하는 것도 조금 황당해 보이구요.  작가는 소설의 구성이나 문학적 완성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듯합니다.  작가는 오직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불균형적인 경제 발전으로 인해 쇠락해가는 지방 도시의 문제점은 물론, 가정 폭력, 은둔형 외톨이, 사이비 신흥 종교, 정치권의 세습, 사기 세일즈,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 유부녀의 원조 교제 등 현대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후미에를 납치했던 노부히코는 학창시절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여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고, 게임 속의 가상현실을 사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당했던 폭력을 그의 부모에게 행사하면서 말입니다.  그가 한 말은 가슴이 아픕니다.

 

"학교라는 데는 공부 잘하는 놈 아니면 싸움 잘하는 깡패 같은 놈의 전용 놀이터야.  그 밖의 학생들에게는 교도소하고 전혀 다를 게 없어.  날마다 학교에 갇혀서 듣기도 싫은 수업을 듣는 게 무슨 얼어죽을 의무교육이야?  난 이 학교 진짜 죽도록 싫었어.  수학여행 때는 어땠는 줄 알아?  나를 깡패새끼들하고 한 팀에 몰아넣었지.  여행하는 사흘 내내 짐꾼 노릇만 했어.  애초에 수학여행 같은 거 가고 싶지도 않았어.  일주일 전부터 배탈이 났었다고.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느냔 말이야."    (p.590)

 

기분전환 삼아 자신있게 선택했던 책들도 간혹 원래의 목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책으로 귀결될 때가 있습니다.  오쿠다 히데의 책이라면 무조건 읽는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내가 굳게 믿었다가 낭패를 본 것처럼 말입니다.  뭐, 그럴 때도 있는 거죠.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한 낭패도 경험하면서 살게 마련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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