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라고 생각해요. 살아보니 그렇더군요. 다 때가 있는 법이지요. 굳이 서두르거나 욕심을 켤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그만한 나이에 군은 충분히 의젓하고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사려가 깊지요. 그것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군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편견이나 거부감 없이 타인을 받아들이고 싶다 하셨죠? 그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고 말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저는 군이 바라는 삶이 머지 않은 장래에 꼭 이루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오늘은 군에게 줌파 라히리의 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들려주고 싶군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따분한 소설로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우리네 일상처럼 아주 작고 소소한 것들을 작가는 집요하리만치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만일 군이 이 책을 읽는다면 처음 몇 페이지를 겨우 넘기고는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문을 박차고 나갈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다거나 형편없는 소설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언젠가 모슈미가 자는 쪽 침대에 놓여진 책 더미에서 발견한 소설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불어로 씌어진 것을 영어로 번역한 책이었는데 몇백 장이나 되는 긴 이야기 내내 주인공들은 그저 '그'와 '그녀'로 불려졌다. 그는 몇 시간 만에 책을 다 읽었고, 주인공들의 이름이 끝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해 이상한 위안을 받았었다. 불행한 사랑 이야기였다. 그의 삶이 그렇게 간단하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p.317)

 

제목에서 혹 짐작했을지 모르지만 작가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하여 거듭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은 것도 아닌데 이름이 한 인간을 규정짓고 그 사람을 대표한다는 사실에 저도 가끔은 아이러니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군도 혹시 자신의 이름에 대하여 한번쯤 의문을 품지는 않았는지요. 책에서는 인도계 미국 이민 2세대인 고골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외투>로 유명한 러시아 작가 니꼴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와 동명이인이죠. 인도 출신인 그의 부모가 주인공에게 '고골리'라는 이름을 부여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인 아쇼크는 기차여행 도중 큰 사고를 겪게 됩니다. 일찌기 고골리에 매료되었던 아쇼크는 사고가 있던 그날도 고골리의 작품을 읽고 있었고,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납니다. 그리고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합니다. 나이가 들어 맞선을 보고 결혼하게 된 여자가 고골리의 엄마인 아시마입니다. 두 사람은 이제 미국에 정착합니다. 그러나 인도의 문화 속에서 성장했던 두 사람은 미국에서도 그들의 문화를 고집합니다. 말하자면 몸만 미국에 있는, 이름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행동도 완벽하게 인도인이었던 셈이죠.

 

"그녀와 아쇼크는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오후 반나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두 이름이 적혀 있었을 꼬리표를 떠올렸다. 그때는 보관해둘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 꼬리표를 생각하니 남편과 함께한 그들의 인생이 떠올랐다. 그가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그녀에게 준 예상치 못했던 이곳에서의 삶.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삶을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그리고 아직도 이 펨버튼 로드의 벽 안에서 완벽한 편안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곳이 그녀의 집이었다. 그녀가 꾸리고 떠맡아온 세상이었다. 이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짐을 챙겨 누군가에게 주거나 하나씩 버려져야 했다." (p.360)

 

그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고 인도 전통에 따라 인도에 있는 할머니로부터 아들의 이름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편지는 도착하지 않았고, 고골리를 좋아했던 아쇼크는 아들에게 고골리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자신의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던 고골리는 결국 대학입학과 동시에 '니킬'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합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고골리'로 살았던 그의 어린 시절마저 그의 삶에서 잊혀지거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8년 동안 고골리로 살아온 이후 두 달 동안의 니킬이란 뭔가 빈약하고 미약한 존재였다. 때로는 연극에서 배역을 맡데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눈으로 봐서는 구별이 안 되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쌍둥이 중 한 명이랄까. 불현듯 옛날 이름이 마치 아픈 이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p.140)

 

인도식 이름도, 미국식 이름도 아닌 제3의 이름으로 살았던 고골리. 그는 인도 전통을 고집하는 부모님의 삶으로부터 끝없이 달아나려 합니다. 미국 여자와 연애를 하고, 미국식 사고방식에 적응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부모님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하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고골리로 하여금 좋든 싫든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게 됩니다. 결국 고골리는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돌보고 일정 부분 인도의 전통이나 문화에 기우는 듯 보입니다. 어린 시절에 알고 지내던 인도계 미국인 여성 모슈미와도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그마저도 이혼으로 끝납니다.

 

"여러 면으로 그의 가족의 삶은 에상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았던 하나의 사고가 다음 사고를 낳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시작은 아버지의 기차 사고였다. 이 사건은 처음엔 아버지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었지만, 나중에는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은 욕망을 낳게 하였고, 세상 저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했던 것이다. 다음은 고골리의 증조할머니가 지어주신 이름이 담긴 편지가 캘커타와 케임브리지 사이 어딘가에서 사라진 사고였다. 이로 인해 얼떨결에 고골리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고, 이 이름은 수년 동안 고골리라는 한 인간의 윤곽을 형성함과 동시에 괴롭혀왔었다. 그는 이런 임의성을, 이런 빗나감을 바로잡으려 해왔다. 그러나 자신을 완벽하게 새로 창조하는 것은, 그 엉뚱한 이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결혼 또한 실수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가족의 곁을 떠나신 것은 사고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사고였다." (p.369)

 

제가 군에게 이 소설의 내용을 미주알고주알 늘어 놓은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군이 겪는 부모님과의 갈등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누군가의 몸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는 비록 타인의 몸을 빌어 생명을 얻은 것은 분명하지만, 러시아 전통 인형 타트로시카처럼 새로 태어나는 새생명이 처음의 그것보다 반드시 작게 태어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부모님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부모님보다 더 큰 발전을 보이는 게 인간의 삶이고, 우리의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군! 부디 용기를 내세요. 군을 낳았을 때 부모님이 지어주신 군의 이름이 상품의 브랜드처럼 군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군이 '누구누구의 아들'로 불려지지 않고, '아무개의 부모님'으로 군의 부모님이 불려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인 즉슨 부모님과의 갈등은 지극히 보편적인 것일 뿐 군의 인성이 특별히 나쁘거나 비윤리적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부모님과 마찰을 빚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이제 그들의 부모보다 더 큰 그릇이 되었음을 알리는 시발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줍잖은 충고로 군을 위로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나도 한 아이의 아비인지라 이런 말밖에는 달리 들려줄 게 없군요. 다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겠지요. 군의 앞날에 건투를 빌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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