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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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고 나는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이런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인 듯싶다.  일본 소설이라면 약간의 편견과 거부감이 있던 나로서는 더더구나.  한 권으로 끝내기에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동네 도서관에서 그의 작품을 주욱 훑어보았다.  서가에는 꽤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작가인 듯싶었다.  그 중에서 내가 고른 책은 <남쪽으로 튀어>.  사전 정보도 없이 제목만으로 책을 고르는 게 마뜩치는 않았지만 나의 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도서관 입구의 카운터에서 대출증과 함께 책을 내밀었더니 사서 아가씨 왈, "이 책 영화로도 나왔어요.  한 번 꼭 보세요.  재미있어요." 한다.  예감은 다른 누군가의 지지에 의해 너무도 쉽게 확신으로 변한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 생각나기도 하고, 아리엘 도르프만의 회고록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방향을 나타내는 어떤 말이 책의 제목으로 붙여질 때 나는 왠지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남쪽으로 튀어>는 11살 소년 우에하라 지로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인 동시에 그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가 완전한 자유를 찾아 파이파티로마(우리나라로 치면 이어도쯤 될까? 아무튼 지도에도 없는 비밀의 섬)로 향하는 과정을 그린 모험소설이기도 하다.  지로의 아버지는 한때 혁공동(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의 전설적인 행동대장으로 활동하였으나 목표보다는 개인의 이권에 골몰하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에 회의를 느껴 탈퇴하고 지금은 프리라이터를 자처하는 백수로 지낸다.  어딘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지로의 아버지는 국민연금 납부를 독촉하는 구청 담당자에게 국민임을 관두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지로의 수학여행비가 너무 비싸다며 학교 선생님에게 항의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작고 작아. 이 사회는 새로운 역사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구원해주지도 않아. 정의도 아니고 기준도 아니야. 사회란 건 싸우지 않는 사람들을 위안해줄 뿐이야." (2권 p.287)

 

지로의 가족은 작은 찻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와 백수인 아버지, 누나 요코, 그리고 여동생 모모코로 구성되어 있다.  부잣집에서 자란 지로의 어머니는 대학 시절 운동권에 가담했다가 누나 요코를 임신한 채 상대방 남자를 칼로 찌르고 구속된다.  그때 요코를 키우고 돌봐준 사람이 지로의 아버지였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지로와 모모코를 낳았지만 지로의 외가와는 일절 왕래가 없었다.

 

어느 날 지로는 중학생 불량배인 가쓰로부터 협박을 받게 되고 그들과 다투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비밀을 가쓰로부터 듣게 된다.  외할머니와 우연히 마주친 후 지로와 모모코는 외갓집을 방문하게 되고 자신들과 다른 상류층의 생활을 부러워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운동권 후배가 지로네 집에 은신함으로써 지로는 원치 않았던 사건에 휘말린다.  아버지의 운동권 후배가 조직 내 다른 분파의 대장을 살해한 것이다.  경찰의 조사로 어수선하고 공안과 기자들의 출입이 잦아지자 집주인은 지로네 가족에게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한다.

 

누나 요코를 제외한 지로네 가족 네 명은 오키나와의 이리오모테라는 남쪽 섬으로 이사를 한다.  아버지는 개발 예정지의 폐가를 수리하여 그곳에 정착한다.  수도도 전기도 없는 그곳에서 아버지는 밭을 일구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등 원시적인 삶에 열성적으로 매달린다.  지로에게는 도쿄에서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낯선 모습이었다.  지로와 모모코는 전교생이 다섯 명뿐인 그곳 초등학교에 전학한다.  도쿄에 남았던 요코 누나가 돌아옴으로써 가족은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그러나 평화롭던 생활도 잠시 개발업자들의 철거가 시작되고 격렬히 저항하던 아버지와 캐나다 청년 베니는 구속된다.

 

"경잘과 기업에 창끝을 들이댄 사람을 통쾌하다며 재미있어 하면서도, 그것을 막상 내 일처럼 생각해줄 사람은 없다.  텔레비전을 지켜본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싸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을 안전한 장소에서 구경하고 그럴싸한 얼굴로 논평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냉소를 던지리라.  그것이 바로 아버지를 제외한 대다수의 어른들이었다."    (2권 p.267)

 

그러나 베니의 도움으로 듣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전설의 섬 파이파티로마로 향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파이파티로마 섬에 내려오는 전설적 영웅 ‘아카하치’ 신화로 끝난다. 아카하치는 섬이 본토로부터 독립되어 자유롭게 살기를 희망하고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하였으나 결국 이웃 왕조의 침략에 의해 처형되는 인물이다. 지로는 이 신화를 통해 비로소 아버지가 꿈꾸던 이상을 이해하게 된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져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2권 p.245)

 

이 소설은 겉보기로는 초등학교 6학년인 우에하라 지로의 성장 과정을 다룬 소설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파고들면 주인공인 지로의 시선에 비친 각종 부조리와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욕심, 그 속에서 완전한 자유를 꿈꾸는 아버지의 이상이 겹쳐지고 있다.  우리는 사는 내내 편안함을 대가로 어떤 대상이나 제도와 끝없이 타협하게 된다.  자유는 자신의 불편과 타인으로부터의 차별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지이자 불가능에 도전하고자 하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편리를 대가로 나의 자유는 얼마나 깎여나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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