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
에디트 피아프 외 지음, 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젊은 연인들을 만날 때마다 되똥거리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없는 사랑은 오직 탐욕과 질투만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믿는 나의 아날로그식 감성이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속으로 알 수 없는 불안을 실어 나르는 까닭이다.  한번 굳어진 습관은 변화된 환경을 거부하며 제 행동에 대한 합리화의 표찰을 끝없이 만들어낸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오래 전 연인들은 편지를 쓰고 하염없이 답장을 기다리며 마음을 조렸었다.  가슴 가득한 그리움을 기다림의 세월 속에 켜켜이 쌓는 것이 사랑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나는 그렇게 옛 방식으로 사랑을 배웠다.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은 가끔 노래로 달래곤 했다.  노래가 없는 청춘을 생각할 수 있을까마는 그 시절의 청춘들에게 노래는 곧 세월을 견디는 위안이자, 사랑의 완성을 기원하는 간절한 기도였다.  하여, 내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면 추억보다 노래가 먼저 흘러나오곤 한다.  저마다의 추억은 노래의 선율을 따라 제각각 흐른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 들었던 대중가요와 중,고등학교 시절의 팝송과 사랑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샹송과 삶의 무게를 깨닫는 시절의 트로트와...

 

샹송을 처음 알게 된(알았다기보다는 처음 듣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불문학과에 재학중이었던 아내는 유명한 샹송 가수의 노래들을 테이프에 담아 듣곤 했었다.  내가 이브 몽땅, 에디트 피아프, 아다모, 멜라니 사프카, 나나 무스꾸리 등 생소한 이름들을 노래와 함께 기억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내를 만난 덕분이었다.  그때 들었던 샹송은 내 청춘의 강렬한 지문(指紋)이었다.  나는 지금도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떨려오곤 한다.  어쩌면 내가 이 책 <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를 읽게 된 것도 그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마르셀 세르당이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에디트는 오열했다.  그녀는 2년 동안 자신의 삶에 의미를 주었던 남자의 죽음에 몹시 죄책감을 느꼈다.  이 비극적인 사랑의 종말에 가눌 길 없는 큰 충격을 받은 피아프는 함께 따라죽을 생각을 하기도 했고, 영혼의 교신을 통해 사랑의 부활을 얻으려고 영매술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에디트는 마르셀을 위하여 노래하기로 결심한다.  '사랑의 찬가'는 죽은 뒤에도 영원히 그와 함께 하겠다는 절실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옮긴이의 글'중에서)

 

이 책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여자가수로 꼽히는 에디트 피아프와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그녀의 연인 마르셀 세르당이 여섯 달 동안 주고받았던 사랑의 편지를 모아 엮은 것이다.  마르셀 세르당이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생애 마지막 여섯 달 동안 두 연인이 함께 나누었던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한 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사람 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마르셀은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에디트는 세상에 물들지 않은 마르셀의 순수하고 착한 심성애 반했다고 한다.

 

"나는 결코 너에게 어울릴 만큼 충분히 아름다울 수는 없을 거야.  너의 영혼은 너무도 아름다우니까.  나는 너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을 미워할 거야.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던 나이지만 말이야.  나는 네가 누구보다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을 거야.  만일 언젠가 너에게 근심이 생긴다면 나는 너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그것을 나눌 거야.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    (p.104-105 '에디트 피아프의 편지'중에서)

 

에디트 피아프는 다른 연인들처럼 마르셀의 옷을 골라주고, 그의 스케줄에 맞춰 자신의 시간을 조절하고, 마르셀의 아들을 위해 손수 놀이옷을 만드는 등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쳤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마르셀이 뉴욕에 있던 에디트 피아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던 파리와 뉴욕 사이의 하늘 어드메쯤에서 멈추었다.

 

에디트와 마르셀의 짧고 애절했던 러브스토리는 벌써 반세기를 넘어버린 옛이야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L' hymne l' amour)'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의 슬픈 이야기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그녀의 한평생이 가슴 한켠을 아릿하게 적시는 까닭은 그녀의 순수한 열정이 이 순간을 사는 우리에게도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삼복의 무더위 속에서도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결코 멈출 수 없는 사랑의 감동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