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의 시작법詩作法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에 미혹되어 시인으로 살아온 지 30년이 지난 안도현 시인.  그의 작품이야 워낙 유명하여 다는 아니더라도 몇 구절쯤은 암송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터.  그러나 바쁜 현대인에게 시는 역시 어렵고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일 뿐, 낭만과 여유로움 속에 맘에 두었던 시를 나즉나즉 읊으며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시인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책을 뒤적이고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열정에 비하면 내가 이 책을 읽은 소회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시를 이해한다는 것, 나아가 자신이 직접 시를 쓴다는 것은 다락에 쌓아 둔 먼지 묻은 시집 몇 권의 가치보다도 못할 터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책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를 읽었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0년대의 시 열풍, 그 정점에는 서정윤의 <홀로서기>와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 있었다.  대학생은 물론 중고생과 직장인 모두에게도 시는 삶의 허기를 채워주는 마음의 양식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는 시는 한낱 시인의 전유물이자 대학 입시를 위한 통과의례쯤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한 해 동안 발행된 시집을 다 합쳐도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판매량에 미치지 못하는 이 현실은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서글프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나라만큼 시인이 많은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수천 명의 시인이 책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시의 나라라면 적어도 시적인 일들이 곳곳에 넘쳐나야 마땅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비시적인 생각과 행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움직이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인이 되는 일을 단순히 개인적 명예와 욕망을 채우는 장신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을까?  혹시 글 쓰는 자의 태도에 어처구니없는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를 쓰는 기술과 훈련뿐만 아니라 영혼의 생산자로서 시인이 된다는 일이 무엇인가를 여기에서 조금 따져보고 싶었다."    ('머리글'에서)

 

작가는 이 책에서 시의 전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자가 아니라면 어쩌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수도 있는 이 한 권의 책이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을 흔들고, 어제의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 종국에는 그들 모두가 서늘한 시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날이 오기나 하는 걸까?  나는 결국 가슴 에이는 심정으로 이 책의 책장을 넘긴다.  우리 사회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 아니 그보다는 시인의 가슴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는 것은 '바보', '멍충이'로 살아가겠다고 서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에도 안도현 시인은 생활인으로서의 시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시를 창작하는 사람은 시인의 개인적인 삶과 시를 별개로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삶은 엉망진창으로 살되 건강한 시를 쓰라는 말이 아니다.  시라는 텍스트의 자율성을 존중해야지 창작자의 사사로운 체험이나 느낌을 가지고 시를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 편의 시는 한 사람의 시인이 쓴 것이지만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에다 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지 시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p.271)

 

요즘 들어 '시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어쩌면 우리 문학의 총체적 위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한 나라의 미래는 그 구성원의 영혼이 바로 설 때, 그리고 민족의 정신이 흔들리지 않을 때 밝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디선가 장인수 시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차피 우리 시대는 활자매체에 의한 시집은 팔리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판매 부수 따위는 이제 특별한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판매부수에 연연해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판매부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시인의 몫이 아니라 출판사의 몫일 뿐이다. 판매부수보다는 다른 장르와의 넘나들기로 통한 독자와의 만남을 넓혀야 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내 생각은 단호하다. 시의 탄생 과정에서는 대중성과의 단절을 고독하게, 외롭게 추구해야 하며,  시의 유통에 있어서는 대중성과의 결합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자라면서 아이 적의 생각을 버렸듯 시대는 이제 시를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그렇게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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