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엘리 위젤 지음, 김하락 옮김 / 예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열차'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은 '여행'이나 MT 등 낭만적인 그 무엇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내게 떠오르는 그 장면은 기대와 설레임에 가득 찬 낭만의 풍경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늦가을의 서늘한 한기를 품은 공포와 두려움이다.  내가 지금처럼 열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은 군생활의 경험 때문이었을 게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도 열차를 타지 않는다.  더불어 병역의 의무가 신성하다는 둥 자랑스럽다는 둥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철이 든다는 둥 하는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울컥 치솟는 구역질을 느끼곤 했다.  그런 말들은 아마도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누군가를 현혹시키려고 하는 말이거나, 군대 경험이 전혀 없는 누군가의 입을 통하여 근거도 없이 지어낸 말이기 쉬울 것이다.  가장 빛나야 할 청춘의 시기에 살인의 기술을 배우면서 보내야 했던 29개월의 지옥 같았던 시간을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자랑스럽게 여겨본 적이 없었다.

 

나는 논산에서 6주간의 신병 훈련을 마쳤다.  그래도 그 기간 동안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던 늦가을의 어느 날.  우리는 밤 10시에 출발하는 연무대발 의정부행 TMO열차에 몸을 실었다.  풋내기 병사들을 가득 실은 밤열차가 대전-조치원-천안을 지나면서 각각의 역에 정차할 때마다  한 무더기의 화물처럼 신병들을 토해내었다.  정들었던 동기들과 헤어지는 슬픔도 슬픔이지만 자신이 근무할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자신의 키만한 더블백을 짊어지고 떠나는 신병들의 뒷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 모두에게 뻣뻣하게 굳은 공포로 다가왔었다.  그날의 풍경은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엘리 위젤의 <나이트>를 읽으며 나는 신병 훈련소를 떠나던 그날을 생각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열다섯 살의 나이에 가족들과 함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작가는 화물열차에 실려 강제수용소로 향하던 그때의 풍경을, 그리고 전쟁의 막바지에 탔던 가축 수송용 무개열차에서의 끔찍했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우리는 식량을 배급받지 못했다.  눈으로 연명했다.  빵 대신 눈을 먹었다.  낮도 밤과 다름없었고, 밤은 암흑의 찌꺼기를 우리 영혼 속에 남겼다.  열차는 천천히 달렸다.  때로는 몇 시간이나 멈추었다가 다시 달렸다.  눈은 그칠 줄 몰랐다.  다른 사람 위에 올라탄 사람도 있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얼어붙은 몸뚱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눈을 감고 있었고, 열차가 멈추어서 시체를 들어내기만 기다렸다."    (p.175~p.176)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가끔 이런 의문이 고개를 내민다.  '나는 왜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읽는가?  우리 민족의 이야기도 아니고, 내 일가친척의 이야기도 아닌데.  게다가 인간의 잔혹한 모습에서 내가 배울 것이라고는 인간에 대한 혐오뿐인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내릴 수 있는 답은 인간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역사는 그 비슷한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인간은 그때마다 경각심은커녕 너무도 빨리 잊는다.  다음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어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까마득한 옛날에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한 유대인 소년이 '밤의 왕국'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소년이 겪은 혼란과 고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광석화같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게토.  추방.  밀폐된 가축 수송용 열차.  유대 민족의 역사와 인류의 미래.  그 모든 것의 희생을 뜻하는 불타는 제단."    (p.202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문 중에서)

 

1986년에 엘리 위젤은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어떠한 명목으로든 전쟁은 모두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의 망령이 하루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을 기치로 내걸고 중동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미국도, 이에 동조했던 유럽의 각국도 여전히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인류애와 관용을 전면에 내세우는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살육의 역사는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은 세살배기 어린 애도 다 안다.  그저 알 뿐이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예술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신앙의 반대는 이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생명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작가 엘리 위젤의 외침이다.  무관심의 역사는 끝업이 반복될 뿐이다.  뱀이 입으로 제 꼬리를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ouroboros)의 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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