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봄은 찬란한 만큼 그늘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 어느 작가의 글귀처럼 좋은 일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쁜 일들(또는 놓친 일들)이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저께 밤 늦은 시각에 고등학생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양 쭈볏거리며 주변을 서성이는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빨리 정리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에 골몰하여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며 초조해 하던 아이를 재빨리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는 자신으로 인해 내 수면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몹시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며 괜찮다며 웃어 보이기는 했지만 내심 걱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 아이는 내가 알기로는 중학교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그동안 지켜본 바로도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한참 동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뜸을 들이던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하는 것만 같아서 늘 불안하고, 그래서 잠도 잘 자지 못하는 까닭에 학교 수업 시간에도 졸기 일쑤이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주에 내게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 보여서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야 겨우 털어놓는 것이란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중학교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학습 환경과 친구들.  반협박에 가까운 선생님들의 독려.  그럼에도 학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자신의 형편.  이 모든 것들이 그 아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옥죄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으리라.  한동안 가슴을 졸이면서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었던 그 학생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가슴속 이야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들려준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공부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재미, 오기, 그리고 자존감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 하에서 공부를 재밌어 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재미'는 분명 공부를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원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재밌어 하는 일에서 실패하거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생들 중에 공부가 재밌어서 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공부에 있어 내가 생각하는 '오기'는 누군가를 반드시 이겨보겠다는 '경쟁의식' 또는 '시기나 질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런 동기로 공부를 시작하지 않나 싶은데 이런 '오기'는 그나마 공부를 시작하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자신의 한계를 드러나게 하고 언젠가는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방법으로 경쟁을 할 경우 본인의 능력보다는 언제부터 그 방법을 사용했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임에도 학생들은 대부분 자신의 친구도 똑 같은 방식으로 공부했는데 자신만 성적이 나쁘다는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가 언제부터 그렇게 공부했는지는 따져보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방법을 제공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승부를 겨뤄야만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만을 탓하고 결국은 좌절하게 된다.

 

학창시절, 나는 중학교 2학년부터 자취를 했다.  시골에서 처음으로 도시로 나온 그때, 남들처럼 공부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밤 늦은 시각까지 공부한다는 것은 힘들기도 하거니와 다른 학생들이 몇 시까지 공부하는지 가늠할 수 없기에 공부를 하면서도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었다.  집중력을 요하는 공부에서 불안감은 최대의 적이다.  하여 내가 선택한 것은 밤 11시에 자고 새벽 2시에 기상하는 것이었다.  그 이른 새벽의 고요와 마주하며 나는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에 점차 중독되었다.  공부든, 일이든 정말로 잘하고 싶다면 자존감에 중독되어야 한다.  마약보다 더 강한 중독이 자존감임을 나는 그때 배웠다.  자존감은 타인과의 비교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나만의 방식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의욕이 꺾이고 무기력해진다면 혹시 내가 사는 방식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배워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아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이기려면,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면 그 방식을 적용한 절대 시간으로 누군가를 앞서야 한다.  자신의 능력이나 환경을 탓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모두 미래에 있다.  영원 같기도 하고, 금세 손에 잡힐 듯하기도 한 모호한 기준의 시간은 모두 미래다.  그러나 그 '미래'라는 시간은 희망이 아닌 함정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점검하고 살펴야 하는 것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미래가 아닌 현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녘에 학생을 보냈다.  잠깐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알람이 울리고 습관처럼 산을 올랐다.  직장에서 오후에 잠시 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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