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등산로는 안개가 자욱했었다. 바람이 없는 까닭에 어제 아침보다는 기온이 살짝 높았고, 흐린 하늘에 안개를 더한 탓인지 산길은 제법 어둑어둑했다. 산새의 울음소리도 잦아들어 조용하고 여느 날보다 훨씬 줄어든 등산객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산길은 사방이 괴괴했다.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던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함초롬히 살구꽃이 피었다. 어릴 적 추억이 되살아나는 아침.

 

추억은 때로 위로도 되고, 삶의 고통을 가볍게도 하지만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어떤 기억은 그 사람을 완전히 집어삼켜 무자비하게 쓰러트리기도 한다. 완전히 다 잊은 듯했던 기억도 어느 순간 생생히 되살아나기도 하고, 바로 어제 있었던 일도 까맣게 잊어버리는 걸 보면 인간만큼 더 허약한 존재도 다시없는 듯하다. 오늘은 4·19 혁명 59주년이 되는 날.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날이지 않은가. 이승만 정권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현재의 자유당은 4·19 혁명 기념일을 맞아 반성의 말 한마디라도 내놓아야 마땅할 터인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오히려 '조파 독재' 운운하고 있으니 어불성설도 이런 어불성설이 없을 듯하다. 독재의 유전자를 타고난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끔찍했던 진주 방화 살인 사건의 주범 안인득의 얼굴이 공개됐다. 세상은 점점 흉폭해지고 힘없는 사람만 희생자가 되고 있다. 이 모든 게 우파 독재의 산물이 아니던가. 부자와 권력자만 우대했던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낸 결과물. 버닝썬과 정준영의 사건도, 김학의 사건도, 장자연 사건도 모두 그 연장선에 있다. 우파 독재를 거부해야 하는 당연한 귀결. 4·19 혁명 59주년 기념일에 우리는 '우파 독재'를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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