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5주기였던 어제, 많은 분들이 슬픔 속에서 하루를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어린 생명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무능했던 지난 정권에 분노했던 사람들이라면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세월호의 '세' 자도 듣기 싫다는 사람도 더러 있어서 SNS 올라온 그들의 글로 인해 슬픔은 분노로 바뀌고 참혹한 세상을 한탄하게도 됩니다. 자유당의 차명진 전 의원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 먹는다”라고 했다지요. 언론에 보도된 그 글을 읽고 제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같은 당의 정진석 의원은 '세월호 이제는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글을 게시했다고 하더군요.

 

개중에는 그런 막말을 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궁금하다며 할 수만 있다면 그들 모두에 대한 정신분석을 의뢰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심리를 이해합니다. 이해하기 싫지만 굳이 이해하자면 못할 것도 없지요.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확실한 처벌과 진솔한 사과가 있지 않고서는 가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세 등등하게 마련입니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이고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식으로 반응하게 마련이지요. 예컨대 일제 점령기의 일본만 하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과는커녕 자신들의 정당성만 일관되게 내세우고 있으니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민족을 배신했던 친일파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일본의 잘못을 덮어주기 위한 방책으로 최종적, 불가역적인 합의를 밀실에서 체결해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뻔뻔했던 일본의 태도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지요. 이제 일본의 망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도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진솔한 사과가 없었던 까닭에 우리는 용서할 대상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나날이 분노만 더하게 되지요. 지난 정부에 연루되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더 기세 등등하게 되었고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독일은 정말 지혜로운 국가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함은 물론 전쟁에 가담했던 관련자들을 색출하여 철저히 처벌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쏟아질 분노를 어느 정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날 선 비난과 막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덮어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언젠가는 나치의 잘못도 덮어주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과와 용서는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있을 때, 그리고 그들에 의한 진솔한 반성과 사죄가 뒤따를 때 비로소 용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절차가 없는 곳에서는 세월이 흐른다 해도 분노와 보복의 감정만 더할 뿐이지요. 그럼에도 자유당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세월호 유족들만 비난하고 있습니다. 미련하게 말이지요.

 

그 슬픔이 하도 커서 


                                이해인


사계절의 시계 위에서 세월이 가도 
우리 마음속의 시계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50분 
전 국민이 통곡한 세월호의 비극은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고 멈추어져 있습니다 
5년 전의 그 슬픔이 하도 커서 바닷속에 침몰하여 일어서질 못하고 있습니다
 
여행길이 죽음길이 되어버린 304명의 희생자들과
이들을 구조하다 목숨 잃은 이들 
시신으로조차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을 어찌 추모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해 더욱 슬픕니다 
팽목항의 방파제에 펄럭이는 기다림의 깃발과 유품들이
침묵 속에 울음을 삼키고 있습니다 

살릴 수 있는데도 못 살려낸 사랑하는 이들 
생각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이런저런 오해들과 걸림돌들이 하도 많아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던 유족들의 슬픔은 누가 달래줄까요
용서하려 애를 써도 용서가 안되는 
그 비통함은 어찌 다스려야 하는 걸까요
 
왜곡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슬픔조차 뒤로하고 투쟁부터 해야 했던 유족들께 죄송합니다 
‘잊으십시오’ ‘기다리십시오’라는 말을 가볍게 내뱉었던
부끄러움 그대로 안고 
오늘은 겸손되이 용서를 청해야겠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맑고 어진 마음 모아 함께 울어야겠습니다 

죽음보다 힘든 어둠과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는 
우리의 유족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하고 싶습니다
기도가 되지 않더라도 기도하고 싶습니다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며
푸른 바다와 수평선을 바라보며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오늘도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 
미안하다는 것,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위기에 처한 이웃을 이기심으로 방관하고
비겁함으로 방치하는 못난 실수와 잘못을 
다신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새롭히는 것입니다
 
힘겹게 몸부림치다 외롭게 떠나갔을 저세상에서
이제는 님들이 이 세상의 우리를 도와주세요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해 
가끔은 답답하고 우울한 우리가
속히 안일함의 늪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주세요 

남을 탓하지만 말고 핑계를 대지 말고 
눈물 속에 절절히 참회하여 마침내는
파도처럼 일어서는 희망이 되라고 
흰옷 입은 부활의 천사로
한줄기 바람으로 가까이 와서 
우리를 다시 흔들어 깨워주세요
넋두리가 되어버린 이 부족한 추모글도 용서하세요 
사랑합니다. 이제와 영원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