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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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 그렇게 보면 '나이 듦'은 누구에게나 가장 강력한 스승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어느 작가는 돌아갈 수 있다면 몇 살이 좋냐는 친구의 질문에 서른여덟 살 정도가 좋다고 대답했다고 자신의 책에 쓴 걸 읽은 적이 있다. 젊은이는 자신이 원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이 높은데 반해, 30대 후반이 되면 이건 좀 무리네, 하고 일단 깃발을 내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그냥 사람'이 생기는 것도 이 무렵이며,'흑백 가리지 않고, 흐르는 강물 같은 관계를 맺는 것도 괜찮지. 그렇게 생각하는 데 38년 정도는 걸린다.'고도 썼다. 하유지의 소설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을 읽으며 불현듯 그 대목이 떠올랐다. 서른셋이면 다소 젊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소설 속 영오는 서른여덟의 다른 누구와 비교해도 충분히 어른스럽다고 느껴졌던 까닭에.

 

"그날 아버지는 피곤했거나 일터에서 모욕을 당했거나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했을 것이다. 아니면 몸이 아팠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있든 없든, 많든 적든,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일이 가시처럼 기억에 박히기도 한다. 어떤 틈은 희미한 실금에서부터 벌어지고, 어떤 관계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목만으로도 망가진다." (p.69)

 

참고서 편집자인 서른세 살의 영오. 4년 전 어머니가 폐암으로 죽은 후 아버지와는 겨우 6~7번 만났을 정도로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경비원을 하면서 힘들게 살았던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죽은 후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월세 보증금과 밥솥 하나, 그 안에 담긴 수첩이 전부였다. 인맥이 넓지 않았던 아버지가 수첩에 적어 놓은 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 영오는 아버지가 경비원으로 일했던 학교의 수학 교사인 홍강주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나머지 두 명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미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오가 편집한 '튼튼국어'를 풀다가 문제가 재밌다며 매일 전화를 거는 열일곱 살의 소녀 미지. 홍강주가 근무하는 새별중학교 학생이며 졸업을 앞두고 있는 미지의 세계는 정형화된 그런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거부하는 미지와 12월 31일 다니던 회사에서 잘린 미지의 아빠를 엄마는 개나리아파트로 쫓아냈다. 옆집에는 아내를 잃고 두문불출하는 노인 두출이 산다. 아내와 사별한 후 '돈' 때문에 딸과 멀어졌던 두출과 동창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미지는 '버찌'라는 고양이를 통해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며 마음을 열어간다. 호기심 많고 오지랖 넓은 미지와 성격이 괴팍하지만 정이 많은 두출 사이의 우정이 깊어가는 동안 삶에서 받은 두 사람의 상처는 조금씩 치유된다.

 

"상처 없는 사람 없어. 여기 다치고, 저기 파이고, 죽을 때까지 죄다 흉터야. 같은 데 다쳤다고 한 곡절에 한마음이냐, 그건 또 아니지만서도 같은 자리 아파본 사람끼리는 아 하면 아 하지 어 하진 않아." (p.171)

 

관계맺기가 서툴렀던 영오와 미지가 세상을 향해 어렵게 손을 내미는 과정을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는 이 소설은 나이가 많든 적든, 경제적 여건이 좋든 나쁘든 이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안치환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도 있지 않던가.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사람은/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곁에 반짝이는 꽃눈을 달고/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람이야말로/짙푸른 숲이 되고/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몇 달 동안 영오의 인생에 새겨진 이 이름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털어놓아야 할까. 홍강주부터 명보라까지? 아니면 영오부터 공미지까지? 이 다섯 사람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동그라미. 이들은 점으로 시작해 선으로 이어졌다. 점은 선이 된다. 선은 점을 포함한다." (p.302)

 

허술하기만 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단히 이어주는 삶의 끄나풀은 뭐니뭐니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믿음과 공감의 몸짓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때로는 약간의 용기와 단단한 결심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그와 같은 세월의 요구를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세월보다 더 좋은 스승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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