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꼭 하나 배우고 싶은 기술이 있습니다. '과거를 다루는 기술'입니다. 인생 전체를 통해서도 결코 완벽해질 수 없는 기술이기도 하고, 아무리 갈고닦아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충격이나 외부 환경의 변화에 의해서도 아주 손쉽게 무뎌질 수 있는 허약한 기술이기도 하지요. 예컨대 질병이나 죽음, 경제적 파산이나 돌이킬 수 없는 사고 등으로 인한 충격은 아름답기만 하던 과거를 무지막지한 괴물로 변신시키는가 하면 그 괴물이 한 사람의 잔여 삶 전체를 통째로 삼켜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과거라는 괴물 앞에서 아주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통제하고 언제든 과거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곤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진 가수 정준영의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전자 기계에 남겨진 자신의 기록으로 인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무너지거나 큰 타격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 기록을 철저히 소각하거나 지우려 했던 전두환에게서 보는 것처럼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자신의 과거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게도 되고, 자신의 과거를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마치 남의 일인 양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나의 과거이지만 나의 의지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나는 과거라는 게 그 자체로서 생명을 가진 별개의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과거라는 존재와 나는 내가 생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서로 협조하고 상생하면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다루는 기술'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기술이지만 아무도 연마할 수 없는 허황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력을 과거라는 존재에 조금씩 빼앗기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넘겨줌으로써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닐지... 봄볕 완연한 휴일 오후, 아슴아슴 졸음이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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