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고주영 옮김 / 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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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의 기억을 끝없이 반복하며 되새기게 되는 이유는 뭘까? 되새김질하듯 반복하는 그 기억 속에서 우리는 어렸을 때는 미처 몰랐던 숨겨진 의미나 깨달음을 새로 발견하기도 하고, 이제는 영원히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를 가슴에 품기도 한다. 그 시절에 자주 찾던 앞산의 언덕이나 산자락의 공터, 불투명 유리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던 만화방, 온갖 잡동사니를 팔던 학교 앞 문방구...

 

이가라시 미키오의 만화 '보노보노'에 대한 추억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가지런히 꽂혀 있던 친구네 집 책꽂이에서 우연히 보고 꺼내 읽었던 '보노보노'. 책을 펼쳤을 때 나는 퀴퀴한 종이 냄새 대신 학창 시절 사내아이 방에서 풍기던 시큼한 땀냄새와 만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나른한 휴식, 그리고 만화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날이면 유난히 빨리 찾아오는 저녁 어스름.

 

"『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는 <보노보노>의 베스트 컬렉션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30년 넘게 꾸준히 연재해 온 에피소드 중에 특별하게 고른 이야기만을 모았으니까요. 보노보노와 숲속 친구들이 모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모았기 때문에 <보노보노>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입문용으로 읽기에도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골랐지만, 인기가 많았던 이야기들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p.10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만화의 주인공인 보노보노와 절친 포로리, 숲속 개구쟁이인 너부리,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게 되는 야옹이 형,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명랑한 성격의 홰내기, 너부리와는 숙명의 라이벌이면서 포로리의 누나인 아로리 등 성격도, 생김새도, 사는 환경도 다 다른 숲속 친구들은 때로는 티격태격 서로 다투기도 하고 또 금세 화해를 하기도 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우쳐 간다.

 

책에 수록된 에피소드에서 너부리는 자신의 꼬리를 떼어내 군더더기 없는 멋진 몸이 되겠다는 엉뚱한 결심을 내보이는가 하면, 모두가  요즘 뭔가 신통치가 않고 재미가 없다는 너부리의 말에 여러 기발한 놀이를 생각해내기도 하고, 모두 쓸쓸하니까 시시한 얘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는 포로리의 말에 정말 그런지 쓸쓸해지기도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는 건 풍경을 보면서 걷는 것과 비슷하구나' 하는 멋진 말을 남기기도 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만화에 익숙해진 요즘 독자들에게 이 만화는 어쩌면 시시하거나 밋밋하다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탈도 많고 사건도 많은 현대인들에게 보노보노와 그의 친구들이 펼치는 단순하고 순진한 일상들이 말할 수 없이 푸근한 안식처가 되고 가슴 따뜻한 위로가 되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습관처럼 마주치는 자극에 자신도 모르게 지쳐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밥은 먹었느냐? 와 같은 일상적인 물음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리워진 것은 아닐까.

 

종일 어둡기만 하던 하늘에선 오후가 되자 결국 몇 방울의 비가 되어 떨어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찬바람이 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저물고 있다. 우리의 삶에 행복을 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일을 무작정 기다릴 게 아니라 특별한 일을 스스로 찾고 다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임을 보노보노와 숲속 친구들은 우리에게 말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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