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벌써 겨울에서 봄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 겨울이 지나간다는 것 혹은 봄이 온다는 것은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따스한 봄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런 설렘이 있었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말이다. 그러나 올해는 어찌 된 게 설렘은 고사하고 두려움이 앞선다. 기온이 오르고 바람이 잦아든다는 건 미세먼지의 농도가 높아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답답한 집 안에 갇혀 지낸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며칠째 바깥출입을 자제한 채 실내에서만 머물고 있다.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책보다 더 좋은 것도 없지 싶다. 이윤용의 <이제 너는 노땡큐>를 읽고 있다. 책날개에 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글을 보니 라디오작가란다.  '해외에서 살아본 적 없는 서울 토박이로, 용기 없어 사고 못 치는 순둥이로, 라디오가 좋아 일에 매달리는 일벌레로 살다가, 세상의 쓴맛과 인간관계의 독한 맛을 경험하고 이제는 흐트러진 날라리로 살고 싶은 싱글 여성'이라고 씌어 있다. 방송 작가의 글은 대개 은어와 비속어가 살짝살짝 뒤섞인 감각적인 글이 많다. 설렁설렁 읽기에는 편하고, 이따금 깊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건 싫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가. 키워야 하는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명품백이나 보석으로 치장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 세끼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되는데 왜 선뜻 블루존에 가서 살 마음이 들지 않는 걸까. 그건 아마도 지금껏 살면서 움켜쥔 몇 안 되는 결과물들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 정도면 엄청 욕심 없이 사는 거야, 라고 내가 나에게 우겨도, 가만 들여다보면 지금의 일을 스스로 놓을 자신도, 들어온 일을 쿨하게 거절할 용기도 없는 사람. 슬프지만 그게 나인 것 같다. 우리 블루존에 가서 살까? 친구의 물음에 흔쾌히 대답할 그날이 올까. 내가 '욕심존'에서 벗어날 용기를 가질 그날 말이다."

 

직업은 각자 다 달라도 살아가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인 듯하다. 적당히 고민하고, 적당히 포기하면서, 또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래도 나만의 자존감은 지키고 싶은, 그러면서도 뭔가 하얀 백지와 같은 도덕심으로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길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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