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읽기 - 세상을 이해하는 깊고 꼼꼼한 읽기의 힘
로버트 P. 왁슬러 지음, 김민영 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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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인 소설은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듯이 우리가 읽었던 어떤 평론은 우리를 과거의 기억 속으로 이끌고 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 기억으로부터의 출구를 도무지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저자가 나의 생각을 정확히 대변하는 듯도 하고 소설을 읽던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하나하나 불러내는 듯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여라도 저자가 다루는 어떤 소설이 아직  내가 읽지 못한 소설이라 할지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그 소설을 읽게 되고 과거의 기억으로 변해버린 저자의 평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되짚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미지와 스크린이 우리의 언어를 대체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언어와 이야기의 중요성을 말한다는 건 시대에 한참이나 뒤진 사람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험한 책 읽기>의 저자인 로버트 P. 왁슬러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가 점점 언어적 존재로서의 입지를 잃어가고 있음을 몹시 우려한다. 우리의 뇌가 깊이 읽고 사고하는 '읽는 뇌'에서 스펙터클과 표면적 감각만 탐하면서 점점 우둔해지는 '디지털 뇌'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체험하는 세상은 환영과 실제 사이의 경계, 원본과 복사본 사이의 경계, 허구와 일상 사이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고 둘 사이의 벽은 점차 약해져서 급기야 우리는 '오프라인의 삶'보다는 '온라인의 삶을 선호하고 순간적인 지식의 습득만을 추구하게 된다고 진단한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우리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고 우리를 둘러싼 인간 공동체의 삶을 부정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의 전환.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독서를 통제할 수 있기에 독서는 우리의 필요와 리듬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주관적이고 연상적인 충동을 충족시키는 데 자유롭다. 이를 위해 내가 만든 용어가 바로 '깊이 읽기', 즉 책을 느리고 사색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단어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에 접근하여 우리의 삶을 꿈꾸는 것이다." (p.10)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야기의 중요성을 일깨움으로써 우리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집안에서 집 밖으로 나오게 하고, 불편하고 복잡하다고 여기는 공동체를 향해 손을 내밀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스스로의 특이성(개인적 자아)을 발견하고, 공동체와의 연대감(사회적 자아)을 확인하며, 익숙함이나 낯섦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언어 내러티브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 짓기도 한다.

 

"이야기는 무엇이 인간 세계에서 지속되며 무엇이 이 세상의 인간을 만들어내는지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완전한 인가으로서 우리의 삶이 가진 불안정함, 그리고 우리의 나약함과 평범함이다. 반면 명멸하는 순간의 산만함 속에서 정보와 데이터는 마치 그 순간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신神인 것처럼, 군주로 군림하며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시킨다." (p.291)

 

디지털 시대의 개인은 자신의 삶이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개인은 절대적인 자아 찾기에 골몰할 뿐 공동체 속에서의 자신인 상대적 자아에는 관심이 없다. 오프라인에서의 관계 맺기에 취약한 현대인의 단점이기도 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문학의 '깊이 읽기'와 '꼼꼼히 읽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특히 내러티브를 가진 소설은 우리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며,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이 광대한 시공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비트 단위로 쪼개기를 좋아하는 디지털 시대의 현대인이라면 더더욱 자신의 삶이 인류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알 수 없게 되며, 그럴수록 우리는 순간적인 쾌락이나 표면적 관계를 중시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창세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깊이 있게 분석함으로써 독서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인 왁슬러는 책이 우리 인간의 유한함, 세상 속에서의 우리 인간의 위치, 타자와의 관계 등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 등 생각하면 숙연해지고 골치 아파지는 문제들을 성찰해보도록 촉구하는 것이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몰랐다면 '행복'했을 수 있지만, 한 번 알고 나면 잠들어 있던 우리의 인식을 일깨우는 것이 바로 책이다. 때문에 책은 '위험'하며 그 '위험함'이야말로 책의 미덕이라는 것이 왁슬러의 주장이다." (p.308 '옮긴이의 말' 중에서)

 

나는 그 위험한 것을 오늘도 신줏단지 모시듯 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남몰래 들춰 보고 있다. 어떤 혜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읽는 인간으로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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