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인 시인으로부터 시집<가벼운 입술소리>를 선물로 받은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생각이 번다하여 시구는 그저 마른 낙엽처럼 흩날린다.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을 건조하게 살아가는 까닭에 몸보다 앞선 마음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 풀풀 먼짓내만 풍기고 있다. 메마른 시구는 가슴에 남지 않는다. 그저 눈으로만 훑고 지나쳤던 시는 시인에 대한 미안함으로 남는다. 머잖아 봄이 오고 메마른 대지에도 봄처럼 초록물이 오르면 벙그러진 미안함을 내 눈에 가득 담아 한 자 한 자 눌러가며 읽어야겠다. 

 

눈송이

 

먼 우주에서 날아온 눈송이가

나비처럼 날아서

모닥불에 내려앉았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여!

하늘하늘 흔들리는 불꽃에

넋을 잃었다

 

꽃잎 깊숙이 몸을 들이밀자

이내 불꽃이 되었다

 

사랑은

온전히 주었을 때 찾아온다

 

 

개구쟁이 휘파람새

 

휘파람새가 놀려 댄다

열여섯 살 꽃님이

 

중 중 까까중

중 중 까까중

 

복숭아빛 수줍음 붉게 타는

꽃님이 볼 때마다

얄미운 휘파람새가 놀려 댄다

 

또래 애들 학교길 훔쳐볼 때

경전 펴고 사르르 눈꺼풀이 풀리면

 

중 중 까까중

중 중 까까중

 

개구쟁이 휘파람새가 놀려 댄다

부끄러워 할수록 재미있다고

자꾸자꾸 놀려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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