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음식에 대한 기호는 어릴 적 추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렸을 적 가정 형편이나 부모님의 성격, 형제의 유무 어쩌면 부모님의 교육관이나 이웃과의 유대 관계 등 그 사람의 몸에 촘촘히 새겨진 삶의 무늬가 음식에 대한 기호를 통해 발현되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가정 형편이 어렵고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음식은 그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 이상의 의미는 지니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유하고 자유분방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음식에 대한 탐닉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모리 마리의 산문집 <홍차와 장미의 나날>을 읽어본 독자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로 태어난 작가는 부유한 집안의 첫째라는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자란 듯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까닭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와 같은 삶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고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렸을 적 기억을 간직한 채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이다.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고 괴로운 작업이긴 해도 그 세계 속에 일단 제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쓸 수 있게 된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입술 주위에 과즙을 잔뜩 묻힌 채 달콤한 백도를 무아지경으로 먹는 상태라고 할까. 가끔 아직 이 정도로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는 조증 환자여서 가끔 어울리지 않게 우울하고 내성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생각이 구름처럼 흩어져 태연해지는 그야말로 행복한 성격의 인간이다." (p.199~p.200)

 

두 번의 이혼 끝에 친정으로 돌아갔던 그녀였지만 여동생과 남동생의 결혼,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등으로 텅 빈 집에서 혼자 살 수 없어 따로 방을 얻어 살게 되었다는 그녀. 아이들과 떨어져 홀로 외롭게 지내면서 싱크대도 공용으로 써야 하는 셋방의 열악한 환경을 탓하기는커녕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겼던 걸 보면 인생은 그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책의 내용은 음식과 관련한 유년 시절의 추억과 친구들과 얽힌 여러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모리 마리의 소소한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닥친 여러 근심거리나 이런저런 문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기도 하는 걸 보면 음식 이야기에 섞여들어 간 작가의 인생관이 독자들의 머릿속으로 전이되는 듯하다.

 

음식을 단지 생존 수단으로만 여기는 나는 맛집 앞에서 길게 줄을 서거나 아주 먼 거리를 운전하여 맛집을 찾아가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었다. 그러나 큰돈 들이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걸 무엇보다 즐겼던 아내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 대신 아들과 함께 여러 음식점을 돌아다니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질색을 했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모리 마리 정도는 아닐지라도 가까운 사람과 음식 한 끼 나누는 것이야말로 삶의 큰 기쁨인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슬픈 이야기를 하나 쓰겠다. 아버지는 마지막 병상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여간해서 자리에 들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어"라고 말하며 다다미방에 앉아서 식사를 하셨지만 손이 떨려서 상아 젓가락이 밥그릇 가장자리에 부딪치며 딱딱 소리를 냈다. 어딘지 모르게 하얀, 죽음의 그림작가 떠도는 듯한 푸른 잎의 나무들 언저리로 눈길을 주며 어머니는 슬픔으로 기력을 잃어버렸다." (p.128)

 

음식을 즐기는 것도, 그렇다고 요리를 잘 만든다거나 남다른 미각을 지닌 것도 아닌 나이지만, 요리와 관련된 책은 시간이 날 때마다 더러 읽었었다. 언뜻 떠오르는 책의 제목만 하더라도 박찬일 셰프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나 독일의 일류 요리사인 되르테 쉬퍼의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등 줄줄이 이어진다. 우리는 사실 살기 위해 한 끼를 때운다기보다 가까운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거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가 되는 건 음식을 빙자한 삶이 아닐까 싶다.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건 당신과의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이다. 그 말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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