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게 산다는 것 - 불필요한 감정에 의연해지는 삶의 태도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변덕이 심한 날씨가 며칠간 계속되었다. 멀쩡히 개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천둥이 치고 우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말처럼 계절은 이제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할 터였다. 주말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는 월요일 출근길에는 말끔히 개었다. 사심이 없는 담백한 하늘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하늘을 마주하는 날이면 괜스레 부끄러워지곤 한다. 내가 살아온 삶의 얼룩이 하늘 한편에 속속들이 투영되는 듯해서 말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윤동주 시인처럼 나이가 들수록 끝내 이룰 수 없는 소망들만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이 역시 내 생각이지만, 계절 중에서는 겨울이 가장 담백함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추운 날 오히려 쨍하고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겨울은 봄날의 들뜸도 없고, 여름날의 화려함이나 열정, 피곤함도 없으며, 가을날의 서글픔도 없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다음 해의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p.30)

 

'담백하게 살아가기'가 인생의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는 양창순 박사의 에세이 <담백하게 산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늦가을에 어울리는 책이다. 사람의 습성이야 늘 자신이 갖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한 일들을 욕심내게 마련이지만, 자신이 직접 죽음 직전의 경험을 겪거나 아주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을 목도하게 되면 그와 같은 욕심도 조금씩 옅어지곤 한다. 죽음에 대한 체감은 삶은 그야말로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자가 뜬금없이 들고 나온 책의 제목이 <담백하게 산다는 것>이라는 데 의아함을 갖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미리 방어하고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까칠하게 살고자 했던 저자가 주변 환경에 개의치 않고 담백함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만 보아도 세월이 흐른 만큼 저자 역시 성숙해진 게 아닌가 싶다. 어쩌면 저자 역시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치를 내려놓았는지도 모른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아니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이 결국은 '기대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세상에 내 기대치를 온전히 만족시켜줄 사람은 없다.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p.79)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담백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 2장 '담백한 삶이 가져다주는 최고의 선물', 3장 '담백한 삶을 방해하는 몇 가지 요소들', 4장 '담백한 삶을 위한 마음 솔루션', 5장 '담백하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으로 담백하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담백하게 살면 뭐가 좋은지,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담백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담백하게 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담백한 일상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처방은 무엇인지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이 시점을 살지 못하고 늘 과거에, 미래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것은 '무'라는 한자처럼 현재 이 시점에 내게 주어진 것을 못 보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담백함은 또 다른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현재 이 시점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보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p.214)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얼룩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의 기대치를 완벽하게 충족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누구나 처음인 인생, 신이 아닌 이상 실수가 일상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언제나 완벽함만 추구하며 사는 건 아닐까. 이런 불가능한 목표를 내려놓지 않는 한 우리는 늘 삶의 무게와 스트레스에 짓눌린 채 평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와 같은 책을 읽을 때면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다가도 며칠만 지나면 남과 견주면서 자신을 들볶는 걸 보면 내 눈에도 욕심의 색깔이 담백함의 색깔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절대로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렇게나 외치던 분도 현실에서는 그놈의 욕심 때문에 영어의 몸이 되지 않았던가.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게 삶인가 보다. 저녁이 되자 다시 흐려진 하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의 마음처럼 날씨마저 어수선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