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법을 잊었다
오치아이 게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특별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책에서 큰 감동을 받게 될 때, 책과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반쪽이 될 사람을 우연처럼 발견하게 되었을 때의 감동처럼 말이다. 오치아이 게이코의 소설 <우는 법을 잊었다> 역시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소설이라기보다 주인공 후유코가 적어 내려 간 간병일지나 다름없는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하는 그런 책이었다.

 

 

"나는 좌절하지 않는다. 나는 굴복하지 않는다. 나는 죽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여러 의미에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모든 기술과 능력, 지식과 지혜를 잃어버린 늙은 어머니를 남기고 딸이 먼저 죽을 수는 없다. 인지장애라는 증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빼앗긴 어머니 자신의 삶에 대한 확인. 나는 어머니 삶의 대행업자가 되려는 것인가. 그건 가능한 일일까." (p.161)

 

 

소설의 주인공인 후유코는 치매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7년째 함께 살고 있다. 일흔두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의 후유코가 어머니를 간병하고 어린이책 서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려가는 모습은 왠지 모를 숙연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후유코의 어머니는 혼외 자식으로 그녀를 낳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후유코는 어린 나이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후유코에게 청개구리를 선물했던 친구의 남동생은 어느 날 물풀을 따다 주기 위해 늪으로 갔다가 시체로 발견되었고, 장례식장에서 힘없이 앉아 있던 그 아이의 어머니를 본 후 자신이 죽게 되면 혼자 남겨질 그녀의 어머니 역시 그런 모습일 거라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후유코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어머니는 강박증에 시달렸다. 깨어 있는 내내 손을 씻고 또 씻는 바람에 액체 세제 한 통을 일주일 만에 다 써버리기 일쑤였던 어머니는 새 옷을 입으면 세균이 달라붙는다는 강박증세로 인해 옷을 갈아입는 것도, 목욕도 거부하는 등 불안정한 신경 증세를 보였다. 그러던 어머니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 후유코 자신의 친부가 거의 동시에 죽음을 맞으면서 어머니는 당신이 겪던 긴 '겨울잠'에서 스스로 깨어나게 되었다. 힘들게 살아왔던 어머니. 후유코는 남들의 칭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어머니 같은 여자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야말로 왜곡돼 있는 거죠.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어머니를 칭찬할 게 아니라, 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바꿔가고 싶어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사회 자체를 말이에요. 불필요한 열정을 개인에게 강요하는 사회를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 열심히 하는 것을 미담으로 삼는 사회와 인간관계에도 저는 이의가 있습니다." (p.58)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어머니를 위해 이모들과 사촌, 조카 등 가족들이 모두 모여 생일 파티를 하고, 대소변을 받아주고, 나날이 약해져 가는 어머니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뜻에 반하여 후유코는 어머니의 간병을 도맡음으로써 어머니를 온전히 자신의 손에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그러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7년 동안 돌보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후유코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유로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병에서 벗어난 자신만 그렇게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네 딸을 키웠던 할머니. 좋은 집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기를 바랐던 맏딸이 '아비 없는 자식'을 낳겠다고 했을 때 혹독한 말로 몰아세우며 모욕과 분노를 퍼부었던 할머니를 10년간 병수발을 들었던 어머니.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자신이 없었던 후유코가 독신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지지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 7년을 지켜보면서 후유코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된다. 책에는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갑작스러웠던 죽음과 어린이책 전문서점 '광장'의 직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미치코'의 남편의 죽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후유코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라고 쓴 시인이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까지 나는 어떤 책을 써왔을까. 내가 살아온 일흔두 살이라는 나이의 책. 만약 그 책에 색이 있다면,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을까. 단색은 아닐 테지만 어떤 색이 도드라질지 나는 생각해본다." (p.282)

 

 

작가 자신의 자서전일 수도 있는 이 책을 내가 때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공감하며 읽었던 데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들을 처가에 맡긴 후 내가 혼자 머물던 좁은 숙소로 내려왔던 아내. 나는 온전히 아내의 식사를 챙기고, 행여나 몸이 굳을까 하루에도 여러 번 손발을 주무르고, 아내를 부축하여 산책을 나가고, 산책 후에는 꼼꼼히 몸을 씻기고,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는 등 정성을 다했건만 아내는 겨우 일곱 달을 나와 함께 살았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 삶의 무게를 조금쯤 덜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 자에게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건 곧 외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죽음 직전까지도 누군가를 걱정하고 책임을 지려 한다는 건 외로움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스스로의 어깨에 짐을 더함으로써 외로움에 저항하려는 작은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상실과 슬픔 끝에 찾아오는 자유는 산 자의 몫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얻는 어떤 깨달음은 상실과 슬픔 끝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삶에서 겪는 상실의 고통은 깨달음의 완결이자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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