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게 (반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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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마흔이라는 나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의 수명을 어림잡아 팔십 언저리로 보았을 때 마흔은 그 절반에 해당하는 나이니까 말이지요. 그러나 바쁜 현대인에게 있어 마흔이란 나이는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가장 바쁘고 왕성하게 활동해야 하는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까닭에 느긋하게 자신의 반평생을 되돌아보기는커녕 하루하루의 일과를 분주히 처리하느라 힘에 겨워 비명을 내질러야 할 판이지요.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 역시 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의 일인자이자 '플라톤 철학'의 대가이기도 한 그는 정신의학병원에서 청소년들을 상담하거나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후 도호쿠 각지에서 강연하며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책무에 최선을 다해 임하다가 오십의 다소 이른 나이에 그는 열 명에 두 명은 죽게 된다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그는 심장에 대체 혈관을 연결하는 대수술을 받고 겨우 회복하였다고 합니다. 기시미 이치로의 신작 <마흔에게>는 그와 같은 동기로 쓰인 책입니다.

 

"당시 제 나이는 오십이었습니다. 딸은 고등학생이고 아들은 대학에 막 들어간 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사는지 끝까지 지켜보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죽음이란 어쩌면 이리도 허무하단 말이냐'라고 느낀 것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p.59~p.60)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이 듦'은 곧 자신의 가치가 하락한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타자 공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함으로써 누군가에게 기여를 하고 기쁨을 주는 까닭에 가치가 소멸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듯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 할 수 있던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화는 단순히 변화일 뿐 쇠퇴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체의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변화에는 단지 적응이 필요할 뿐 좌절이나 도피와 같은 움츠림이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좋아하라고 해도 갑자기 그렇게 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행동부터 그만두면 어떨까요? 서로의 과거를 비교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있는 상대에 관심을 기울이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과 대화 내용도 저절로 변하게 됩니다." (p.192)

 

저자는 그의 나이 예순 살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2년 동안 꾸준히 공부한 덕에 한국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됐고, 짧은 서평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십도 되기 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와 인지증을 앓던 아버지에 대한 경험도 들려줍니다. 그의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병상에서 독일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그가 학창 시절에 즐겨 읽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싶다고 해서 저자는 날마다 침대맡에 앉아서 책을 읽어주었다고 말합니다.

 

"남은 인생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이 사실은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식뿐입니다. 늙어가는 용기, 나이 든 '지금'을 행복하게 사는 용기란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아주 조금 바꾸는 용기인지도 모릅니다." (p.93)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적 언급보다는 많은 부분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질병과 죽음에 집착하여 인생을 망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남은 생을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은퇴 후 부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나이 든 부모를 간병하는 문제에 대해 매사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보다는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라는 조언입니다. 생산성이나 성공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화는 곧 실패와 진배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는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질 때가 있는 것처럼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생존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용기, 그것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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