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면서 천방지축 날뛰던 폭염의 기세도 한풀 꺾인 듯 한결 누그러진 느낌입니다. 물론 아직도 한낮에는 30도를 훌쩍 웃도는 지독한 더위가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는 이제 없을 듯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폭염이 이어지던 때만 하더라도 하늘 저편으로 군데군데 뭉게구름이 보이기는 했지만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 이따금 몰려온 먹구름이 적선하듯 찔끔 비를 뿌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계절은 그렇게 가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평소에도 텔레비전을 잘 보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짙어진 듯합니다. 책을 읽는 것과는 달리 텔레비전을 한동안 넋 놓고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무거워지는 걸 느낍니다. 몸도 나른하고 머리도 무겁고 컨디션이 영 좋아지지 않는 것이죠. 그럼에도 텔레비전을 완전히 끊을 수 없는 걸 보면 저도 일종의 텔레비전 중독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에 본 것 중에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벌어졌던 사법 농단에 대한 뉴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완전히 밝혀진 건 아닐지라도(어쩌면 영원히 묻힐 수도 있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재판을 하나의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로 전해져 왔고, 그 정도야 자본주의 국가에서 암덩어리처럼 존재하는 어떤 것쯤으로 인식되었지만 권력에 유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사법부 전체가 나섰다는 사실은 참으로 믿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재판 결과가 누군가에게는 전 생애를 걸 만큼 중요한 일이지 않았을까요? 그런 걸 생각한다면, 적어도 같은 인간이라면 양심에 꺼려 그런 일은 도저히 실행할 수 없었을 듯합니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도 그렇습니다.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 문건이 주는 무게를 실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등골이 서늘하고,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었을 듯합니다. 계엄령 하에서 개인의 생명이나 인권은 아주 하찮은 것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졌던 이전 정권의 적폐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고 노회찬 의원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합니다. 국민을 철저히 우롱했던 보수정권 9년의 폐해가 너무도 크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자 전원을 처벌해야 마땅할 터인데 이번에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야무야 처리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날씨가 더운 까닭에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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