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삶이 기우뚱 균형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는 심각하게 균형을 잃은 듯 보여도 정작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심각하게 기울어진 인생을, 가파른 경사를 한쪽 팔로 간신히 지탱한 채 겨우겨우 살고 있지만 기울어진 삶에 평생 동안 길들여진 까닭에 가파른 경사의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들은 남들처럼 평탄한,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삶'으로 회귀했을 때, 이제야 비로소 삶의 균형을 찾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오히려 팍팍한 삶의 경사에서도 느끼지 못한 지독한 삶의 멀미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지독한 삶의 경사를 겪으며 인생이라는 원판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살아냈던 사람들의 인생을 조용히 회고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삶이 균형을 잃었다는 사실을 미처 감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곤 합니다.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기울어진 경사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거나, 숙명처럼 감수하며 받아들였던 게 아닌가 하고 말이죠. 타인과 나를 비교조차 하지 못한 채.

 

견딜 수 없이 심한 불안이 엄습할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새로운 정보를 차단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여 자신이 얼마나 가파르고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한다고 한들 자신에게는 심한 자괴감과 열등감만 주어질 뿐 현실에서 자신의 삶은 무엇 하나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이 기우뚱 균형을 잃었다고 느낀다는 건 그동안 자신의 삶이 평탄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것의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처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지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살아왔음은 물론 원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삶이지요.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하겠지만 물론 그 수는 적다고 할지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일 테지요. 그러나 삶의 원판이 아래로 기운 사람과 극히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위로 기운 사람 중 삶의 변화에서 누가 더 취약할까요? 나는 아무래도 위로 기운 사람이 아닐까 추측하게 됩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건 그들로부터 보고 듣는 게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참고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 중에는 극단적인 경향의 한 남자를 스토리의 전면에 내세워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독립기관>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그것인데, 그 소설에 등장하는 '도카이'라는 인물은 특이하기 이를 데 없지요. 롯폰기에서 '도카이 미용 클리닉'을 운영하는 성형외과 의사인 그는 쉰두 살의 독신남입니다. 의사였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클리닉은 경영이 매우 순조로워서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까닭에 언행이 점잖고 교양도 있는 사람이지요. 고급 아파트에서 혼자 살지만 요리도 척척 해내고 집안일도 별문제 없이 해내는지라 부족함 없는 삶이었습니다. 다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픈 마음이 아예 없었던 그는 젊은 시절부터 결혼을 전제로 하는 여자는 처음부터 멀리했습니다. 그것 하나가 문제라면 문제였지요. 그가 여자친구로 선택하는 상대는 대개 유부녀이거나, 따로 '진짜' 연인이 있는 여자들로 한정되었습니다.

 

여자 문제로 트러블을 겪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그였지만 결국 그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단순한 만남만 이어가고자 할 뿐 가정을 깨고 싶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아이가 하나 있는 가정주부였죠. 도카이로서는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도, 가정을 깨기 싫다는 그녀의 마음도 어떻게 통제할 방법이 없었기에 모든 걸 내려놓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급기야 그는 곡기마저 끊고 서서히 죽어갑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버릴 것이다." (p.169 '독립기관' 중에서)

 

작가는 최근에 나온 그의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서 도카이라는 인물이 '죽음에 붙들려버린 사람'이라고 언급합니다.

 

"그 도카이라는 인물은 죽음 자체에 홀렸다고 할까, 죽음에 붙들려버린 사람이니까요. 도망치려야 도망칠 수 없는, 일종의 숙명이죠. 작가인 제게는 기정사실이었고. 도카이라는 인물은 지금껏 자신만의 시스템에 따라 매우 편하고 쾌적하고 즐겁게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죽음'에 뒷덜미를 잡혀버려요. 더는 벗어날 수 없게. 이제껏 쌓인 청구서가 날아온 건지, 혹은 숙명이었는지, 인간의 업 같은 것인지, 그저 운이 나빴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죽음이 덜미를 잡고 놔주지 않는다. 다른 수가 없죠. 그런 것에는 리얼리즘이고 뭐고 없거든요. 한번 붙들리면 끝장이니까."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중에서)

 

'명랑하고 건강하고 미식가에 멋쟁이였던' 도카이가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린 까닭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할 만한 주변 사례를 찾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삶의 원판이 위로 기울어진 사람은 그 사례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시스템과 통제 하에 두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시스템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절벽을 만났을 때 그는 아마도 손을 쓸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작가는 그런 의외성,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결과로 작용할지라도 우리도 모르는 어떤 '기관이 개입'하는 듯한 돌발적인 상황을 맞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재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도 가끔은 삶이 기우뚱 균형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겠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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