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머니 - 부의 미래를 바꾸는 화폐 권력의 대이동
고란.이용재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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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증시 격언 중에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는 말이 있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듯한 이 말은 주식에 문외한이거나 주식 초보자에게는 그저 시중에 떠도는 말쯤으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100% 신뢰해도 좋은 금언이다. 비근한 예로 2001년 9월 11일에 있었던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에 벌어진 항공기 자살 테러 사건이 있었던 다음날 세계의 주식시장은 폭락을 면치 못했다. 주식 투자자들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갔던 그날의 기억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어제 벌어진 일처럼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모두가 손해를 보았던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도 있었다. 주가지수의 하락을 예측하는 선물 매도나 풋 옵션 매수를 했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적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에 이르는 초대박 수익을 거두었던 그들에 대한 소문은 많은 개인투자자들로 하여금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선물·옵션 거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직접적인 투자로 이어지도록 했다. 그러나 큰 수익을 냈다는 뉴스를 보고 투자했던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2001년 9월 12일(수요일)과 옵션 만기일이었던 2001년 9월 13일(목요일) 불과 이틀 만에 쪽박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와 같은 일은 개별 종목의 투자에서도 흔하게 벌어진다. 예컨대 모 회사와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거나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는 등 호재가 되는 뉴스가 뜨면 그 순간 잠깐 반짝하던 주가는 금세 곤두박질을 치기 일쑤이다.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진 소문을 듣고 뉴스가 발표되기도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 주식 매수에 나섰고 그 바람에 주가는 상당한 폭으로 상승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뉴스 이전에 선구매를 했던 사람들은 이미 큰 수익이 난 상황이고 차익 실현을 위해 모두 내다 팔 수밖에...

 

2018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대한민국 전체를 들썩이게 했던 비트코인 열풍도 다르지 않았다. 암호화폐의 선구자 격인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2016년,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끌기 시작했던 것은 2017년 후반기였고, 비트코인 거래를 통해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비트코인 열풍에 동참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할수록 비트코인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수수방관하던 정부도 규제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소문에 샀던 사람들은 큰 수익을 내고 떠난 뒤였다. 역시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는 격언은 정확히 들어맞은 셈이 되었다.

 

"시장 과열에 정부가 놀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017년 11월 28일 국무회의에서 비트코인은 사회병리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24시간 거래되는 터라 중독성이 강했고, 하루 만에 한 달 월급이 생기는 시장구조는 근로의욕을 떨어트렸다. 그간 개점휴업 상태였던 범정부 가상통화 태스크포스에 시선이 집중됐다." (P.12)

 

중앙일보 경제부 기자 고란과 블록체인& 암호화폐 리서치 센터 '마스터마인드'의 공동 설립자 이용재가 쓴 <넥스트 머니>는 실체도 없는 투기 대상으로 낙인이 찍힌 암호화폐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고 기존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과 법정화폐의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하나의 새로운 기술이 오래된 체계를 뒤흔드는 게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충하는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폐의 탄생과 함께 명목을 이어온 법정화폐는 수백 년간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변화가 없으니, 무한한 자본 팽창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한 부작용은 금융위기로 발현되어 우리들의 소중한 자산을 위협했다. 암호화폐는 이러한 구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구 제도권 금융에서 당연시되었던 기능, 주체들을 과감하고 멋지게 생략하고도 새로운 경제를 창조해냈다." (p.566)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불신과 오해는 어제오늘 있었던 일도 아니다.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익숙한 것으로 바뀌는 과정은 멀고도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국가에서 막는다고 하여 멈추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쓴 두 저자의 의도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어차피 사라지지 않을 변화라면 차분하게 살펴 그 원리를 깨우치는 게 순서라고 본 것이다. 그러자면 기존의 금융 시스템과 화폐 혁명, 제2차 화폐전쟁 등 우리가 살펴야 할 지난 역사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책에는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또 다른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과 리플 창시자 매캐일럽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도 수록되었다.

 

6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내용의 이 책을 읽는 데 여러 날이 걸렸다. 그러나 기술적인 이해는 여전히 저조하다. IT 기술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탓이다. 그럼에도 최대한의 노력을 시도했었다.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과가 아닌 문과 전공자로서 유시민 작가와 같은 탁월한 이해력을 선보일 수는 없지만 블록체인 기술과 다양한 암호화폐에 대한 어렴풋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유례없는 비트코인 광풍이 휩쓸고 간 대한민국에서 다시 또 암호화폐를 논한다는 건 여전히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내 주변에서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큰돈을 잃고 낙심했던 사람들이 더러 있고 말이다. 암호화폐의 '암'자만 들어도 넌덜머리가 난다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증시 격언 중에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는 말이 있다. 암호화폐가 사라지지 않는 한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섣부른 투자에 앞서 투자 대상에 대해 잘 알아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유행에 민감한 팔랑귀는 되지 말자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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