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괴괴 : 저주받은 갤러리 기기괴괴
오성대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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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만화보다는 웹툰이 더 익숙하겠지만 말이다. 심심하기 이를 데 없는 지하철 공간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이따금 마주칠 때마다 나는 무력한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시절에 만화를 좋아하는 건 달라지지 않은 듯하지만 퀴퀴한 냄새가 나는 만화방에서 손에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빠르게 넘기던 우리 때와 한 컷 한 컷을 오른손 검지 하나로 가볍게 넘기는 요즘 세대와의 간극은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커 보였기 때문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만화의 결합이 만들어 낸 이러한 변화를 아날로그 세대의 나는 어쩌면 기술의 진보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과거에 대한 진한 향수를 동시에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만화는 역시 종이책으로 봐야 제맛이지, 하는 말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구세대의 어설픈 변명처럼 들린다.

 

오성대 작가의 <기기괴괴: 저주받은 갤러리> 역시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던 것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이다. 화면으로 보는 웹툰보다는 책장을 넘기면서 보는 만화책에 더 익숙한 나와 같은 구세대에게는 꽤나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과거처럼 침을 발라가며 책장을 넘길 수는 없지만 속도감 있게 후루룩 읽는 만화책의 묘미에서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곤 한다.

 

"그 기세를 몰아『기기괴괴』라는 이 웹툰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에피소드 형식이라 항상 새로운 일을 하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각종 영상화에 이어 이제 책이라는 것도 출간하게 되었네요. 그동안 다른 작가들 책이 나오는 걸 보면서 딱히 부러웠던 적은 없었지만, 막상 출간을 준비하게 되니 마음이 조금 들뜨더군요. 종이책을 보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마음 한편엔 종이책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있었나 봅니다." (p.491 '작가의 말' 중에서)

 

책에는 지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저주받은 갤러리'와 짧은 에피소드 형식의 '괴모수', '당첨번호', '살의', '불면증'과 부록 형식의 '장르파괴괴'가 실려 있다. 만화라는 특성상 여기서 줄거리를 낱낱이 말하는 건 곤란하겠지만 '저주받은 갤러리'는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학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이한 복수극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단절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첨번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녀 커플의 일상과 과도한 욕심이 부른 비참한 결말을, '괴모수'는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살의'는 원인도 불분명한 학생들의 연이은 사고사와 형사들의 추적을, 불면증에 시달리는 한 여인의 특별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난 갤러리 문 처음 연 지 이주일 조금 넘었다. 지금까지 걸은 사진은 넉 장 정도 되는데 아직 한 장밖에 안 찢었고. 근데 어젯밤에 들어갔다가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x발.. 누가 벽에 내 사진을 걸어 놨더라고." (p.115)

 

옴니버스 형식의 공포 스릴러인 <기기괴괴>는 읽는 동안에는 그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괴기담 중 하나인 듯 여겨지지만 막상 다 읽고 나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오싹한 한기와 함께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머릿속에 희미하게 번져온다. 포털 사이트의 웹툰을 일부러 찾아보는 것도 아니니 나로서는 오성대 작가의 작품인 '기기괴괴'가 네이버 웹툰에 처음 선을 보였던 2013년 이후 줄곧 웹툰 조회수 정상권에 있었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단행본으로 나온 책을 읽어본 경험만으로도 그럴 만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살짝 비틀림이 생겨도 거기에서 공포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작가의 언질. 맞는 말이다. 우리의 불안은 뭔가 거대한 공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된다.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오늘, 만화를 읽었던 짧은 시간 동안 후텁지근한 더위도 조금쯤 잊었던 듯하다.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작가이니 만큼 새로운 작품이 끝없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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