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
명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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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한 게 참 많은 사람이다. 사람에 대하여, 자연에 대하여, 온 우주에 대하여 알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궁금하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얘기이고 관심이 있다는 건 내가 이 지구 상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살아 있음을 문득문득 확인한다. 궁금한 어떤 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면서.

 

"우리는 모른다. 왜 사는지, 물질의 근본이 무엇인지, 우주의 끝은 어디인지, 시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단지 몇몇 지식뿐이다. 아는 게 한 개라면 모르는 것은 천 개, 만 개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모름(不知)'이 아니라 '앎(知)'을 모든 사유의 바탕, 삶의 바탕으로 두고 있는 것일까."    (p.177)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를 쓴 명진 스님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이런저런 시국 사건이 많았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오면서 시국 사건으로 시끄러울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TV에 등장하던 스님의 모습과, 지난해 8월 조계종으로부터 제적 징계를 받은 후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는 기사와,  여러 날의 단식으로 초췌해진 스님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농성장을 찾았던 가수 전인권의 모습 등 세월의 차창 밖으로 언뜻언뜻 스쳐가던 스님과 관련된 여러 장면들이 전부이다. 어쩌면 나는 각박했던 그 시절을 그저 한 사람의 방관자로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삶은 텅 빈 허공과 같다. 우리의 생각은 나뭇잎과 새와 같다. 텅 빈 허공이 있는데, 생각이 묶여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있다. 과연 이 많은 생각이 내 생각일까? 가만히 눈을 감고 삼 분만 생각해보자. 하루에 오만 가지 생각이 왔다 간다."    (p.111)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시대에 스님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쳐오지 않았던가. 아무리 종교인이라지만 결코 쉽부당한 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스님을 보는 시각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듯하다. '운동권 스님', '좌파', '독설왕', '청개구리 스님' 등 스님을 지칭하는 별명도 많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온갖 고생을 하며 성장했던 것으로도 모자라 하나뿐이던 혈육인 동생마저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잃고 무상을 느껴 출가했다는 스님은 출가 후의 삶도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다.

 

"종교가 필요하다면 딱 하나다. 어렵고 힘든 사람과 함께할 때다. 사랑과 자비의 실현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종교를 '고통에 함께함'이라고 정의한다. 아픈 이와 함께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노동하지 않는 종교인들이 밥 먹고 살 까닭이 없다."    (p.253)

 

언제부턴가 나는 성직자가 쓴 책이건, 지식이 많은 학자의 책이건, 또는 부자가 쓴 책이건, 가난뱅이가 쓴 책이건 그 생각하는 방법이나 삶을 영위하는 태도는 큰 틀에서 모두 비슷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과 견줄 정도로 학식이 많다거나 수행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와서 제 그릇대로 살면서 소임을 다하고 마침내 세상과 이별하는 방식은 평생을 수행에만 전념한 큰스님이라고 해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에서 크게 갈리는 부분은 세상의 변화에 대한 개개인의 반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큰 사건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건 나와 같은 범부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큰 사건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며 애를 끓이곤 한다. 순간순간을 흔들리면서 살아간다는 건 누구에게나 피곤한 일이다. 행복은 결국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개 우리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조금만 삶의 속살을 파고 들어가면 우리에게 자유가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삶. 아이들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서 공부하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다. 모두 비슷비슷하게 산다. 삶의 모양이 문제가 아니다. 내용이다. 자기 의지대로 살고 있는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 있는가."    (p.230)

 

정말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것이다, 하고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아, 진작 이렇게 살았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이미 죽음이 멀지 않은 시점이다. 아쉬움과 회한만 안고 떠나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회한이 가슴을 칠 정도로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현충일, 한여름처럼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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