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보던 풍경도 기분에 따라 달라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풍경은 기억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일종의 창조물인 동시에 우리는 평생 동안 창조자로서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셈이 된다. 좋든 싫든 말이다. 어제는 하늘도 맑고 기온도 제법 올라 봄을 만끽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지만 4년 전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어둡고 답답하게만 보였다.

 

오늘은 다시 찾아온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늘이 뿌옇다. 한낮에는 덥다 싶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곤두박질 치는 기온 탓에 몸도 제대로 적응을 못 하는지 피곤하기만 하다. 충분히 잠을 잔 듯한데도 몸은 여전히 무겁고 오후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식곤증이 몰려오곤 한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녹음된 파일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여자가 정말 제정신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으리라.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대뜸 든 생각은 '또라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단지 출신성분이 좋다는 이유로 고속승진으로도 모자라 다른 직원들에게 이와 같은 미친 짓거리를 일삼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우리나라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기업 프렌들리를 외치는 많은 권력자의 비호 아래 평생을 호의호식하는 것은 물론 직장 내에서는 제왕처럼 군림할 수 있으니 그들에게는 대한민국이 파라다이스가 아닐 수 없으리라.

 

20여 년 전 영어회화 열풍이 불었던 시기에 영어학원 강사로 와 있던 어느 외국인의 말이 생각난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그와 가까워지기를 원했던 많은 여대생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월급에서 생활비를 거의 지출하지 않음은 물론 술과 유흥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즐길 수 있다고 뻐기듯 말하면서 한국은 파라다이스라고도 했다. 조현민의 국적도 미국인이라고 하니 불현듯 그때의 일이 오버랩된다. 재벌가 자녀라는 이유로 온갖 천한 짓도 눈감아주는 그런 모습은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늘이 여전히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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