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 넘어진 듯 보여도 천천히 걸어가는 중
송은정 지음 / 효형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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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일에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비단 소심한 성격인 나와 같은 부류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닌 듯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누군가에게 내보인다는 게 어쩜 그렇게 어려운지... 아무 일도 아닌 듯 그저 툭 하고 내던질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어려운 것이다. 현대인은 태어나서 제일 먼저 자신을 감추는 방법부터 배우게 된다던 어느 지인의 말은 내게도 유효한가 보다.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여행책방 일단멈춤이 문을 닫았다.

안녕을 고하는 자리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오후 1시에 출근해 미처 다 치우지 못한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를 했다. 화분 몇 개는 이웃 가게인 식물성에 맡겨두었다. 책방에 인격이 있었다면 이 무심한 끝이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p.179)

 

송은정 작가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는 분명 실패담이다. 작가는 그러나 마치 남의 얘기를 전하는 듯 그저 조용하고 무덤덤하다. 일부러 그런 척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자신이 하던 사업을 접을 때의 느낌이 이토록 담담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는 얇고 아담한 이 책에 한동안 집중한다.

 

염리동 주택가에 자리했던 그녀의 책방은 고작 2년여를 버텼을 뿐이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고 평균 8시간 이상을 일했는데 월 순이익은 평균 60~80만 원 선. 부족한 수입을 메꾸기 위해 저녁마다 워크숍을 돌리면서부터 창업 초창기에 그녀가 가졌던 다짐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만다. '적게 벌고 적게 일하겠다'는 낭만적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았던 그녀의 다짐은 무참히 깨졌다. 게다가 그녀의 기대나 바람과는 반대로 작은 책방들이 늘어나면서 그녀의 스트레스도 증가했다. '다른 삶'을 원해서 책방을 시작했건만 작가는 방콕에 있는 어느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남자친구보다 자신이 더 흥분하기도 한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순간의 감정에 끊임없이 감응했다. 생기가 넘친다. 살아 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나를 꿈에 부풀게 한 이 모든 풍경이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의 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디에도 영원한 저곳은 없다. 지금의 이 흥분도 시간과 함께 퇴색할 예정이었다. 저곳은 다시 '이곳'이 되어 나를 낙담케 하겠지." (p.126)

 

일단멈춤이 문을 열고 닫기까지 2년의 시간을 이 책에 모두 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게 어설프고 서툴기만 했던 작가도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내성적인 자신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서점을 찾는 어느 손님의 연애상담을 하기에도 이른다. 그러나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정제되고 다소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작가가 서점을 열었던 길다면 길었던 시간 동안의 극히 짧은 순간들을 스냅사진처럼 보여줄 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의 길었던 시간들은 책에 없다. 어쩌면 그것은 작가의 기억 속에 화석처럼 굳어진 채 말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만 생각하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언제나 그 기준을 떠올렸다. 결정을 통해 얻는 위로와 이득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맞닥뜨린 한계를 직시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고개를 숙이고, 고마웠던 일엔 미소를 보내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나는 지난 시간을 성급히 봉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일단멈춤을 실패의 경험으로 기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나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p.167~p.168)

 

좋아하던 만화도 교과서에 실리면 읽기 싫어지는 것처럼 아무리 좋아하던 취미도 정작 일이 되면 지긋지긋해지는 법이다. 책방을 하면서 글도 쓰겠다던 작가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작은 실패를 경험 삼아 어느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큰 실패를 대비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앞에 놓인 죽음을 완결이나 성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실패는 우리가 극구 피해가야 할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배우고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담담히 수용해야 할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도 작가의 실패담이 좌절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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