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는 여행기
- 정이현 소설의 [밤의 대관람차]대신 내인생의 첫 대관람차-

간밤에 잠을 설친 게 문제였다. 골든위크 시작 첫째날 도로정체를 예상하긴 했지만 도쿄 근교를 지나는 고속도로에서는 여행시작의 설렘따위는 집어던진지 오래 졸음과 지루함이 몰아닥쳐왔고 아이들은 아우성대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는 여행, 즐기는 여행’이란 나름의 모토를 세우고 빡센 계획 자체는 없이 발길 닿는대로, 들르는 곳에서 한량놀이를 해보자던 다짐은 온데간데 없이 어서빨리, 어디든 도착해서 푹 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성급해지고 볕마저 강해서 네명이 탄 차 안은 후끈 달아올라 조금의 날선 말들에 화끈거리며 댓거리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여행 첫날부터 짜증을 낼 수 없어 수다마저 꾹꾹 참는 중에 오전 열한시즈음 푸르른 나무들이 무성한 숲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숲은 산이 되고 산들은 산맥이 되니 멀리서 대관람차와 롤로코스터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대자연앞에서 인간은 겸허해지니 겸허해야한다는 문장만이 내 머릿속을 강하게 헤엄치게 해야했다.

그러는 동안, 드디어 야마나시현 후지요시다(山梨県富士吉田)!하이큐랜드 입구 앞에서 대자연의 경탄보다 더 강도높은 경탄인지 공포인지 모를 탄성이 침을 꿀꺽 삼키게 했다. 기네스북에 오른 롤러코스터를 보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놀이공원 타령을 하던 큰 아이는 千葉의 マサ목장의 놀이기구를 시시해하더니 하이큐랜드의 어트랙션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이들을 놀이기구에 태우고 유유자적 산책이나 하겠다는 꼼수는 산산이 무너졌다. 어떻게든 시간은 가겠지. 우리는 그저 3 종 놀이기구 탑승권을 구입했으니 이 공포도 끝이 있을 것이다!! 그 위안으로 네 살 아이의 욕구부터 채워야해서 토마스기차를 먼저 타기로 했다. 골든위크라 놀이기구 대기가 시간을 넘어설 거라 예상했지만 토마스기차빼고는 그런대로 줄이 짧았다. 물론 놀이기구의 탑승시간도 무척 빨라서 놀아볼까 할 때쯤 끝나있었다. 무엇이든 절정의 순간에 내려와야 하는 법인가?
마지막 탑승권을 남겨놓고 온 가족이 값지게 써야겠다며 고심하던 끝에 느닷없이 남편이 대관람차를 가리켰다. 고백하건데 놀이기구 자유이용권을 극구 거부했던 것은 비싼 가격도 있었지만 놀이기구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마음이 더 큰 요인이었다. 수능을 끝내고 갔던 애버랜드에서도 tea cup만 타고 장미도, 튤립도 피지 않은 정원에서 꽃구경이 아닌 흩날리던 눈발 구경을 하고 돌아온 뒤, 내 인생의 놀이기구는 없으리라 운명을 점쳤던 나였는데...
그래서인지 큰 아이또한 유난히 겁이 많다. 모계 유전자 때문일리라. 하지만 절대 엄마탓은 안하고 아이가 겁쟁이라고 놀리는 엄마와 자신의 운명의 유전자에 항거하며 놀이기구를 타보고 싶다고 큰소리치는 큰아이. 그걸 알면서 한번 던져본 남편.

“샥샥과 나 사이에, 바위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줄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고 천천히 소멸해가루것이다. 샥샥은 샥샥의 속도로, 나는 나의 속도로, 바위는 바위의 속도로.마흔번째 생일 아침,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떠올리며 비로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정이현의 [상냥한 폭력의 시대]의 이 구절을 일상을 살며 종종 읊어댄다. 샥샥이는 어쩐지 샤샤샥, 빠른 것들이다. 흘러가는 시간, 지나치는 사람들과 너무 일찍 시든 것들. 바위는 어쩌면 느릿하고 굳걷한 것에 대해 짐작케한다. 몇백년을 살아왔지만 매해 봄 새순을 돋는 나무, 오래오래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이라든지 부모에게서 와서 내 자식에게까지 이어지는 혈액들. 그 중에서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살아간다. 어느날 소멸하게 될 것임에도 오늘은, 오늘의 나의 속도.

남편의 그냥 던져본 말에 이번엔 나도 좀 타볼까 했던 마음이 든 건 정이현의 [밤의 대관람차]소설제목 때문도 있었겠다.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건만 어느 날 문득, 일어난다. 어떤 일들이. 여타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던 대관람차라면 내 인생도 한번쯤은 타봐야하지 않을까? 십이년전 요코하마의 대관람차도 그냥 지나친 나란 사람이 왠지 인생의 중요한 관례를 치르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딸아이가 선천적 유전자와 싸워 이기길 바라는 심정과 더불어서 후들거리는 다리를 질질끓어 대관람차에 올랐다. 2주전マサ목장의 스카이워크를 타려고 올라 안전벨트를 매고나서 무서워 울며불며 “데끼나이” 외치며 네 살 아이의 기대를 저버려야했던 설욕을 딛기 위해서라도 관람차에 올라야했다.

내 인생의 첫 대관람차!!! 밤에 안타서 다행이다.
내 발 밑에 공간이 생기고 있다. 지표면으로부터 몸이 뜨고 있다. 발끝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까이 눈쌓인 후지산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어트랙션들이 가까이 보이고 공포의 비명들이 가깝게 느껴진다. 신경을 다른데로돌려야한다.
“후지산은 해발고도가 얼마일까?”
약 3700m, 백두산보다 높고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8000m 를 넘어서는 히말라야보다 낮다. 설산은 멋지고 후지산이 예쁘다며 열광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내겐 먼 남의 이야기일뿐이다. 가까워진 후지산을 보며 감탄을 자아내기엔 내 심장이 너무너무 작다. 어서 내 발이 지표면에 안착하길 바라면서 딸 아이에게는 반대의 핀잔을 주고 있다.
“뭐가 무섭다고 그래?”

내 발이 땅에 닿는 순간은 결국 오는구나. 발 딛고 설 땅이 있는 이지구가 고맙게 느껴졌다. 더불어 높이 떠서도 바라볼 아름다운 산을 만든 신에게도 감사하다. 이 지구와 자연을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인간이 만든 공포때문인가? 발이 땅에 닿자마자 우리는 다음 여행지를 향해 떠나야한다. 愛県(아이치현. 이츠노미야 一宮) 대략 네 시간을 고속도로에 있어야한다. 대관람차보다 더 아찔한 네 시간의 주행이 될 것이다! 어떤이들은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지만 이츠노미야에 가보고싶은 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긴 여정의 중간지점인 숙소가 그곳에 있기에 달려간다. 후지산이여,일본 중부를 꿰뚫어 이어지면서 아름다운 절경을 보여다오! 그렇지 않으면 네 시간을 어찌 버틴단 말인가? 시간은, 오후 세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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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2018-05-1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데미안님, 후지산 전경이 정말 멋지네요. 그림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

데미안 2018-05-11 10:57   좋아요 1 | URL
아른다운 광경을 감상하기에는 대관람차의 공포가 더 컸지만, 지나고 들춰보니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네요!!